북한에 2,235억원을 비밀리에 지원한 것은 현대 대북 7대사업의 독점적 계약을 위한 것이었다는 청와대 당국자와 현대측 주장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현대상선이 북한측과 사업협약을 체결한 시기가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인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 돈이 단순한 경제 거래가 아닌 남북 정상회담 대가일 개연성은 한층 더 높아진 상태다.현대상선은 지난 달 28일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 받은 4,000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2,235억원이 대북사업에 쓰여졌다며 이에 대한 근거자료로 북한과 맺은 기본협약서 1부와 세부협약서 7부를 제출했다. 그러나 현대상선이 제출한 세부협약서 가운데 그나마 날짜가 가장 빠른 개성공단 개발 협약서의 체결 일자는 2000년 8월 21일로 기재돼 있다. 7대 사업과 관련된 다른 협약서의 체결일자는 이 보다 더 늦다.
현대그룹 고위관계자는 현대상선이 북한에 2,235억원을 송금한 시기가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6월 9∼12일 사이였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볼 때 2,235억원은 정상회담과는 가깝고, 대북사업 체결과는 최소 2개월 이상의 간격이 있는 셈이다. 정상회담 날짜가 갑자기 연기되었던 당시의 정황까지 감안해보면 이 돈과 정상회담의 연관성에 대한 의심은 더욱 커진다.
더욱이 현대상선의 주당대로라면 북한과 협력 사업의 협약을 맺기 훨씬 이전에 거액의 대가를 지불한 셈이 된다. 2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사업 추진의 기본적인 안전판도 마련하지 않은 채 북한에 송금했다는 현대상선 측의 해명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같은 이유로 "현대상선이 북한에 보낸 2,235억원은 7대 사업 등에 대한 30년간의 독점권 대가"라는 청와대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의 4일 발언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부에선 "정상회담 직전에 보낸 돈을 사후에 체결된 협약서의 대가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협약서 체결 이후에 거액이 더 송금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의심한다. "2,235억원은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송금됐을 것이고, 7대 사업 계약이 체결된 다음에 실제 계약 대가로 북한에 돈이 더 보내졌을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결국 청와대와 현대측은 대북지원금의 송금 과정 등을 둘러싼 의혹과 함께 이 같은 시차 문제를 해명해야 할 책임까지 추가로 떠안게 된 셈이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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