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자르지 마세요. 성미산이 아야 해요."(소예)4일 서울 마포구 성산1동 성서초등학교 뒤 해발 65m의 성미산 정상. 키 10∼20m의 아까시나무 1,000여 그루가 토막난 채 뒹굴고 있었다. 전기 톱 흔적이 선명한 가지가 여기저기 시체처럼 널브러져 폭격 현장을 연상케 했다. 나무 가지에는 동네 아이들의 안타까운 한마디와 나비 소쩍새가 놀던 성미산의 옛 풍경을 담은 도화지가 걸려 겨울 바람에 애처롭게 날리고 있었다.
주민 정명자(57·여·연남동)씨는 정상에 닿자마자 "에고, 무슨 날벼락이야,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며 가슴을 쳤다. "5월 마다 아까시 꽃이 하늘을 덮고 그윽한 향기를 뿜었는데, 속상할 때 산에 오르면 가슴이 탁 트이곤 했는데…이제 어디로 갑니까." 한탄이 이어졌다. 쓰러진 나무를 쓰다듬던 유계일(63·성산1동)씨는 "동네 안식처 하나 남겨두지 않으면서, 무슨 청계천 살리기냐"며 혀를 찼다. 산책 나온 주민들은 하나같이 "설 전까지만 해도 울창했던 삼림인데…" 하며 망연자실했다.
서울시의 기습 벌목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울창한 숲, 그 때문에 하루 평균 1,000여명이 산책하는 마포의 허파 성미산. 삼림이 훼손된 것은 설 연휴를 앞둔 지난달 29일 오전이다. "유난히 추워 사람 발길이 뜸했다"고 주민들이 기억하는 그날,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산 정상 2,500평(주민 주장 9,000평)의 아름드리 나무 1,000여 그루를 잘라냈다. 2001년부터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배수지 건설 때문이었다. 벌목은 배수지 공사 입찰을 따낸 효림종합건설 직원 30여명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2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진행했다.
성산 배수지는 1985년 수도정비기본계획에 따른 것. 성미산을 50m 깊이로 깎고 1만여㎗ 규모의 물 탱크 두 개를 세우는 것이다. 강북정수장 물 공급의 관말(수도관 끝) 지역인 마포 주민 16만명에게 깨끗한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불가피한 공사라고 서울시는 주장했다. 서울시는 이에 따라 지난해 3차례나 주민 설명회를 열었으나 그때마다 집단 반대에 부딪쳤다. 지난해 말에는 환경성 평가를 실시,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결국 2005년 완공 목표를 맞추기 위해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벌목에 나섰던 것이다.
"밀어붙이기 행정 저지"
주민 단체로 구성된 '성미산 개발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는 설 연휴도 반납한 채 지난달 30일부터 산 정상에서 교대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4일에는 100여명이 덕수궁 앞에 모여 공사 계획 철회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벌목이 이뤄지기 전에도 서명 운동, 성미산 음악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성미산 지키기 운동을 펼쳐왔다.
성미산은 단순한 동네 뒷산이 아니라 자연 휴식공간이자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붉은배새매가 서식하는 한강 생태계의 보루라는 것이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배수지를 건설한 뒤 흙을 덮고 참나무 잣나무 등 고급 수종을 심어 공원을 조성하기 때문에 환경 파괴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홍익대 부근 와우산도 배수지 건설 후 나무를 다시 심었지만 자라지 않아 생태계가 완전히 망가졌다"며 "선거 전에는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 모두 목숨 걸고 지킨다고 맹세하더니 기가 막힐 뿐"이라고 분개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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