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라디오 청취자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91.9㎒)의 인기 비결을 꼽으라면 오프닝 멘트를 들어도 좋을 것 같다.서정적인 이야기부터 때로는 팝 프로답지 않은 시사적인 주제까지. 청취자 중에는 독특한 오프닝 멘트가 좋아 '배철수…' 를 듣는다는 사람이 꽤 많다.
1990년 3월 19일 첫 방송 이후 배씨와 줄곧 함께 일해온 방송작가 김경옥(43)씨가 지난 13년간 방송을 타고 나간 오프닝 멘트를 모아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 행복한 라디오'(이루파 발행)라는 책으로 펴냈다.
'가볍게, 짧게, 재치있게'를 주문하는 오프닝 멘트를 지독한 문어체에 무거운 주제와 때로는 듣기 아슬아슬할 정도의 비판까지 섞어 쓸 수 있었던 건 결과적으로 행운이었다.
서문에도 썼듯 방송원고는 반드시 구어체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문어체로 써 내려간 그의 오프닝 멘트는 톡톡 튀는 시그널 뮤직 'Satisfaction'을 배경으로 DJ 배철수의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목소리와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담당 PD가 10명 넘게 바뀌었지만 두 사람만은 꾸준히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담으면서도 접근 방식은 달리 하려고 했어요. 가령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라며 호들갑을 떨기보다 남과 북에 가로 놓인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떠올리는 식이지요."
그렇게 청취자의 감성을 새롭게 자극하는 글쓰기를 김씨는 "옆구리를 치면서 가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동안의 원고가 버려지지 않고 책으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작가 몰래 차곡차곡 원고를 모아준 담당 PD와 '배철수의…'의 애청자 모임인 '서포터즈'의 힘이 컸다. 정작 김씨는 "방송은 한번 공중으로 전파를 쏘아 버리면 그뿐, 원고를 보관할 생각은 안 했다"고 한다.
TV 방송작가를 거쳐 90년 '배철수의…'를 맡으면서 라디오로 방향을 바꾼 김씨는 2000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 작가상을 수상했고, 현재 여성작가로는 MBC에서 최고참.
그러나 오후 6시 시작하는 방송에 맞춰 매일 그날 방송분을 팩스로 보내야 하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이 오후 4시가 되면 혀가 바짝 탄다"고 털어놓는다.
"첫 줄이 잘 나가면 기사 쓰기가 쉽듯 오프닝 멘트로 청취자에게 공감을 주고 시작하면, 뒤에 오는 음악도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요." 짧은 시간이지만 오프닝 멘트의 비중을 김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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