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공급자(PP)와 지역 케이블방송국(SO)간 프로그램 공급 계약이 한창인 가운데 일부 SO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일부 PP가 프로그램을 공급하고도 수신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채널을 따내기 위해 SO에 웃돈을 얹어주는 역전(逆轉)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올 들어 SO가 중계유선방송업자(RO)와 시청료 인하 경쟁을 벌이면서 그 부담을 PP에 떠 넘길 가능성이 있어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채널계약이 모든 PP와 SO의 일괄 단체계약에서 개별계약으로 전환한 이후 전체 수신료 중 PP의 몫은 32.5%에서 20% 선으로 줄었다.
예술·교양 등 비인기 PP나 영화·드라마 같은 중복 채널이 많은 PP는 신규 진입 시 수신료를 받지 못하는 게 이미 관행으로 굳어졌다. 한 PP 관계자는 "광주의 모 SO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고도 한 달에 불과 20만원을 받았다"며 "그나마 최근 재협상 과정에서 14만원으로 인하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출장비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SO의 웃돈 요구 방식도 교묘해지고 있다. 경기, 강원 지역의 일부 SO는 채널 진입을 원하는 PP를 차례대로 불러 웃돈을 많이 부른 순으로 채널을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 PP 사장은 "SO의 웃돈 요구에 응하지 않아 2개 채널 모두 탈락했다"고 털어놓았다.
흔히 '런칭비'라 불리는 채널 진입비는 통상 500만∼1,000만원 선. 모 복수SO의 경우 지난해 채널 진입비로만 1억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장비와 채널을 새로 정비해야 하는 3·4차 전환 SO들 대다수는 PP에서 SO까지 프로그램을 전송하기 위한 장비인 모듈레이터 비용(250만∼300만원)을 떠넘기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SO가 방송장비 디지털화를 추진할 예정이어서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일부 SO는 이른바 꺾기를 통해 PP에게 돌아갈 수신료 일부를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PP에게 지급해야 하는 수신료가 가구당 100원이라면 이중 20원을 SO가 갖기로 이면계약을 맺는 식이다. 이밖에도 신규 PP의 경우 SO 사장들에게 골프 접대를 하거나 유사 홈쇼핑 광고 매출의 일부를 SO에 상납한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1차적으로는 SO가 전송할 수 있는 채널은 40∼70개로 한정돼 있는 반면 2001년 1월 PP 승인제가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PP가 크게 늘어난 데서 비롯했다. 올 1월 기준으로 PP는 185개로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 SO가 채널편성권을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크다.
PP 업체는 SO업계의 웃돈 요구 관행은 결국 PP의 콘텐츠 투자를 줄여 방송 프로그램의 질 저하를 부를 수밖에 없으며 그 피해는 결국 시청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케이블방송협회 PP협의회 전육 회장(중앙방송 사장)은 "일부 SO가 채널편성권을 자사의 이익 극대화에 악용하고 있다"며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SO가 다양한 채널을 의무적으로 편성하도록 하는 방안을 방송위원회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견 PP인 월드와이드넷의 정훈 전무는 "SO만 탓할 게 아니라 PP업계도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며 "곧 출범할 2기 방송위는 그 동안 정부의 탈규제 정책이 낳은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경쟁 체제를 정착시키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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