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을 파면하고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2002년 11월 29일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 "진실을 밝히는 가장 빠른 길은 한나라당이 내놓은 괴문서대로 통화가 이뤄졌는지 검찰이 확인하는 것이다."(같은 해 12월1일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지난해 대선을 한달 앞두고 국정원 도감청 의혹이 터져 나왔을 당시 여야 관계자들이 검찰수사를 촉구하며 쏟아낸 말이다. 갈등이 고조되자 민주당 김원기(金元基) 이강래(李康來)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안상수(安相洙)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19명은 신건(辛建) 원장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국민들은 "그렇다면 내 전화는 안전할까"라며 공포에 휩싸였다. 국정원이 국회의원과 기자의 통화를 도청하고 불가능하다던 휴대폰까지 감청했다면 그것은 우리사회가 '빅 브라더' 시대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도청방지 기계가 불티나고 공중전화 이용자가 급증하는 등 전 국민이 '도청 노이로제'에 빠지자 검찰 수사만이 진실규명을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거론됐다. 이 같은 상황속에 지난 달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고소·고발 당사자인 여야 의원들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그러나 해당의원들은 이달 3일부터 5일 사이 소환을 통보 받고도 출두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은 "회의 때문에 나갈 시간이 없다"고 했고 한나라당 의원은 "당이 결정할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고소 당시 즉각 수사하지 않으면 검찰을 결딴 낼 것 같던 모습과는 너무 달라진 모습이다. 이들이 소환에 불응한 실제이유는 대선이라는 '판'이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났어도 국민들은 여전히 감청방지 기계를 휴대폰에 매달고 다니는 등 불안에 떨고있다. 진정 국민을 위한 의원님들이라면 국민들의 불안감해소를 위해서라도 검찰조사에 응해야하지 않을까.
노원명 사회1부 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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