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막바지에 이르자 객석에 눈보라가 몰아친다. 종이로 만든 눈이지만 관객은 마치 진짜 눈처럼 서로 눈싸움을 시작한다. 한바탕 눈싸움이 끝나자 이번에는 위에서 커다란 공들이 떨어진다. 관객이 토스하는 데 따라 공이 이쪽저쪽으로 튄다. 광대는 어느덧 관객석으로 내려와 그 광경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본다. 재작년 7월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든 마임 '스노우쇼'의 한 장면이다.그 '스노우쇼'가 눈 내리는 계절에 우리 곁으로 돌아 온다. 12∼23일 LG아트센터. 찰리 채플린과 마르셀 마르소의 계승자라는 평을 듣는 러시아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53)의 역작인 '스노우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쏟아 내는 웃음 속에 슬픔이 녹아 있는 마임이다. 1993년 '옐로우'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연된 후 96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 98년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 상과 러시아 골든 마스크상 등 권위 있는 연극상을 휩쓸었다. 폴루닌은 이번 공연에서 아쉽게도 연출만 맡고 무대에는 서지 않는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가 웃음 뒤에 서글픔을 던지듯 '스노우쇼'도 묘한 느낌을 끌어낸다. 빨간 코에 짙은 화장을 하고 통통하게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노란 옷을 입은 네 명의 광대는 오페라 '팔리아치'에서 나오는 광대처럼 슬퍼도 웃겨야 하는 숙명을 지닌 사람처럼 보인다. 극이 끝나갈 무렵 눈보라 속에서 기적소리가 울리자 광대의 모자는 연기를 뿜고 관객은 웃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별을 알리는 기적소리이다. 광대는 천천히 연애편지를 읽다가 찢어버리고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힘겹게 끌고 나온 침대를 보트 삼아 여행하고, 관객과 눈싸움을 벌이는 장면, 밤하늘에 달님이 은빛 가루를 뿌리며 그네를 타고 광대의 빗자루에 걸린 거미줄이 거대하게 변해 관객석 위로 떨어지는 등 1시간 10여분의 장면 하나 하나가 광대의 머릿속을 스쳤을까. 눈물과 연애편지는 눈보라로 변해 바람에 실려 관객석으로 흩어진다. 슬픔은 기쁨으로 변하고 광대와 관객은 하나가 된다.
재작년 '스노우쇼'를 본 조지영(29·여·회사원)씨는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물은 나고 정말 극에 끌려 들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며 "어린 시절 뛰노는 기분으로 편안하게 즐기기에 제 격"이라고 말했다. 이혼할 예정이라던 30대 초반의 신혼부부가 이 공연을 보면서 펑펑 울다가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노우쇼'는 앞 좌석에서 볼수록 재미있다. 눈보라를 경험하고 광대의 표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좌석은 1층 16열 정도까지다. 앞 자리라면 공을 튀겨 보고 광대와 직접 놀 수 있는 기회도 많다. 현재 80% 정도 표가 팔렸다. 2만∼6만원. 사랑티켓을 이용할 경우 7,000원을 할인해 준다. www.lgart.com (02)2005―0114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