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X, 이 핏덩이 데리고 사고 한 번 쳐?" 겉으로는 '센 척' 하는 여대생 수완은 반말짓거리를 해대는 늙은 고등학생 제자 지훈을 어떻게 혼내줄까 궁리한다. 그러나 수완은 곧 힘의 논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지훈은 돈줄이니까. " '사고 한 번 쳐?'라고 말하고 싶다"는 속말로 금방 꼬리를 내리는 까닭은 아버지는 실직해 집에 있고, 어머니는 닭을 튀겨 팔아 살림을 꾸리고 있기 때문이다.누이 같고 언니 같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수완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가, 막상 김하늘(25)을 만나고는 생각을 고쳤다.
기네스 펠트로 같던 이미지가 망가졌다고 하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한테 사실 고마운 얘기죠. 제 연기와 상황에 몰입해 영화를 봤다는 얘기 아닌가요"라고 되묻는다. 개봉을 앞둔 탓인지 면접시험 치르는 수험생처럼 말투가 뻣뻣하다. "망가지고 다치는 것에 겁을 낸다면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할 수 하겠어요. '오버'하기도 하고 절제하기도 하면서 성숙해지는 거죠."
당차고 똑똑한 이 배우가 영화 속 스물 한 살의 어리숙한 수완이었다니 놀랍다. "잘린 것도 많고, 장면마다 아쉬움이 남아요. 멜로와 다르게 코미디는 더욱 순발력과 빠른 호흡이 필요해요. '이 정도 애드립이면 될 거야' 생각했는데 많이 부족하더라구요."
애교와 푼수 연기의 내공에 대해 물었다. 어디서 그런 공력을 닦았는지. "내게 없는 성향이 밖으로 나오기 힘들 거 같아요. 현장 분위기가 좋았어요. 사실 이런 연기가 어색하잖아요. 안 웃기면 반응이 싸늘해지고, '왜 저래' 그러면 얼마나 민망하겠어요. 그런데 조금만 연기해도 웃어주니까 더욱 신이 났어요."
불만도 남는다. 지훈이 평균 50점을 넘기면 추겠다고 약속한 '막춤'이 그랬다. "춤은 워낙 몸이 안 따라 주니까. 일주일 전부터 너무 찍기 싫고 또 창피했어요. 잠도 안 왔죠. 공포감이 들었어요. 춤을 너무 못 추니까."
실연을 당한 후 술집에서 주정을 부리는 장면에서는 입술을 유리창에 문지르며 '하기 싫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해야 했다.
지훈을 따라다니는 '고딩'들에게 여자 친구로 오해를 사 여러 번 얻어맞는 장면도 힘겨웠다. "손을 몇 번 삐었어요. 맞아서 기운도 빠지고 힘들었지만, 더 힘든 건 저를 때리는 장면에서 NG가 날 때였어요. 제가 아파도 끝까지 촬영이 진행되고 '오케이'가 나야 하는데." 탁자를 두드리며 답답해 하는 모습에서 수완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진짜 지훈 같은 버릇 없는 학생을 만나 과외를 했다면 "장난 아닐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수완이 만큼 했을 것 같아요"란 말도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빨간색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몰고 닭 배달을 가는 장면에서 '생활인의 냄새가 났다'는 칭찬을 하자 "수완이에게서 김하늘 느낌이 나면 안 되잖아요"라고 받아 치는 김하늘. 깍쟁이 같은 모습 속 어디에 수완이가 있는지 다시 궁금해졌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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