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와 같은 진한 중독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작은 키에 언제나 수줍기만 하던 소년들이 어느새 자라나 오랫동안 숨겨온 자신만의 비밀을 하나씩 꺼내 털어놓는 듯한 느낌이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이다. 새로 나온 그들의 5집 '에스프레소'(espresso)는 팬들을 또 다시 그 사적인 감성의 세계에 중독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김민규(32·기타·가운데), 윤준호(33·베이스·왼쪽), 최재혁(28·드럼)으로 이루어진 모던 록밴드 델리 스파이스는 "이번 앨범에는 대중적인 공감을 가질 수 있는 노래도 담고 있다"고 소개한다. 록은 언제나 시끄럽고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저 중얼거리듯 표현해 온 이들의 5집은 그래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시도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타이틀 곡 '고백'은 델리 스파이스가 처음 부르는 사랑노래. 사랑의 수요 공급이 맞지 않아 일방통행의 짝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가장 간단하고 흔한 상황을 담고 있지만, 델리 스파이스식의 '서정성'으로 이 노래는 빛을 발한다.
'노인구국결사대'도 처음 시도하는 사회 비판적인 소재. "지난 대선 기간 동안 JP가 보여준 행동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이 곡은 실제 그의 발언 내용을 펑크 풍의 사운드에 담고 있다. 당연히 방송불가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역시 일관된 소재는 멤버 각자가 느낀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 노래를 듣다 보면 멤버 누군가의 기억 속 이야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툭 툭 튀어 나온다. 감성의 극치를 보여 주는 곡은 최재혁 작사 작곡의 '처음으로 우산을 잃어버렸어요'. 멤버들은 "막내 재혁이가 음악적 날개를 펼쳐 보인 곡"이라고 평가한다.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사람과 비오는 날 헤어진 후, 밤새도록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저 '어딘가에 두고 온 우산 땜에/ 오늘은 통 잠을 이룰 수 없어'라고 노래한다.
5집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따뜻하면서 힘 있는 사운드. 델리 스파이스는 아날로그 녹음기를 사용해 드럼과 기타 소리를 최대한 강력하게 살려 냈다.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 기계를 사용한 이유는 "공연장에서와 최대한 비슷한 소리를 앨범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델리 스파이스는 팬들이 '델리 스파이스식' 코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모호한 단어의 나열로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 그들 음악의 매력. 해를 거듭할수록 그 매력의 공감대는 넓어지고 있다. 4월부터 6개 도시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델리 스파이스. 이제는 팬들이 늘어나 소극장 공연은 차고 넘쳐 불가능하다. "저희의 팬은 록음악 팬도 인디밴드 팬도 아니에요. 그냥 델리 스파이스의 팬이죠.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하고 팬들은 그 음악을 좋아해 주는 것 뿐입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