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측은 3일 대북 비밀지원 사건의 처리와 관련, 진상규명 주체와 절차 문제 등을 모두 국회에 일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불과 10여일 전에도 "정치권은 검찰 수사를 믿고 지켜보자"고 했던 사람이 바로 노 당선자였으니 달라져도 크게 달라졌다.이낙연(李洛淵)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노 당선자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검찰 수사를 해야 하느냐는 것도) 국회에서 (결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달 노 당선자가 TV토론과 업무보고 등에서 "정치적 고려 없는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취임 이후까지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무장관을 통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할 것", "검찰은 특검을 받을 각오로 정면돌파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큰 입장선회다. 노 당선자는 또 1월22일 한나라당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검찰이 정치적 고려 없이 원칙적으로 수사해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거듭 밝힌 바 있다.
이 같이 일관된 입장에서 돌연 '검찰 수사를 국회 판단에 맡긴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을 두고 검찰권 독립의 원칙, 나아가 헌법상의 삼권분립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 여부를 여야 합의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자칫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부인하는 뜻으로 들릴 소지가 있고, '정치권이 검찰 수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노 당선자측의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 내정자, 신계륜(申溪輪) 인사특보 등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적극적인 반론을 펼쳤다. 이들은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두고두고 논란이 남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남북문제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여야와 정부가 초당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만들자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노 당선자가 국회를 존중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처럼 논란거리가 많은 입장을 선택한 것은 결국 검찰 수사를 피해가고 싶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검찰 수사를 배제하고 싶지만 드러내놓고 그 말을 하기 어려운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뜻이다. 노 당선자측의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에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대북 비밀 송금을 시인한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상황 변경론을 들고 나왔다. 김 대통령의 시인으로 사건의 본질이 드러났기 때문에 입장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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