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 '사법처리 불가' 입장을 천명하는 방식으로 '통치권자의 결단'이었음을 주장함에 따라 대통령의 통치행위 개념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3일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에도 불구, 사건 성격 및 관계자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통치 행위란
통치행위를 규정한 명문화한 법률조문은 어디에도 없다. 단 법률이론 및 실무 차원에서 세계 각국이 오래 전부터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통치행위론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띤 통치자의 행위에 대해 법률적 판단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사법심사를 배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통치자의 모든 정치적 행위가 통치행위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 나치정권의 2차 대전 도발, 구(舊) 동독 정권의 실정은 법률적 틀에 근거해 집행된 '정치행위' 였음에도 기본성격이 반(反)인권 범죄였기 때문에 사법처리의 대상이 됐다. 즉 통치행위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돼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통치행위론이 법치주의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적용이 한층 엄격해지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다.
대북송금이 통치행위인가
대북송금을 통치행위와 연결시키려면 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4,000억원 대출 및 송금과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김 대통령은 "개성공단 사업을 비롯한 현대의 대북 7대 사업은 민간 차원의 사업이기는 하나 남북협력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돼 온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 개입을 간접 시인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송금이 이뤄졌는지 소명은 되지 않은 상태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통치행위 여부 판단은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이후에야 가능하다"며 "정치권에서 미리 '이것은 통치행위이니 문제 삼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한 간부 역시 "대북송금을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근거한 통치행위로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개입이 밝혀졌을 경우, 이를 통치행위로 인정할 지에 대한 의견은 갈리고 있다.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통치행위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정당성을 전제하는 것"이라며 "대북송금은 정권 이해차원에서 밀실에서 결정한 사안이므로 헌법을 초월한 통치행위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과 장영수(張永洙) 교수는 "분단국가라는 특수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판단하기 힘든 문제"라면서도 "지원사실을 철저히 은폐했다는 점에서 국민에 대한 정치적 책임까지 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동국대 고유환(高有煥) 교수는 "남북교류의 법적 정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비공개 지원의 필요성은 이해할 여지가 있으며 통치행위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법처리 가능성
검찰이 수사유보 결정을 내린 데는 이 사건을 통치행위로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위법사실을 밝혀내 기소하는 것이 수사의 기본 목적인 이상, 통치행위를 수사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주장이 그 동안 검찰 내부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서울지검 관계자는 "수사유보는 검찰이 예단해 한계를 설정한 결과"라며 "통치행위 여부는 사법부 판단에 맡겼어야 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수사유보 조치로 사법처리 가능성이 물 건너갔다고 보기는 이르다. 향후 정치권 움직임에 따라 검찰 수사재개 및 특검 도입 가능성이 아직도 남아있고 이 경우 김 대통령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의 사법처리는 통치행위 인정 여하에 달려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통치행위 사법처리 사례
통치행위를 둘러싼 법적 논란이 가장 첨예하게 일었던 사안은 1995년의 12·12와 5·18 사건.
당시 검찰은"정치적 변혁의 주도세력이 새로운 정권창출에 성공해 국민의 정치적 심판을 받아 새로운 헌정질서를 수립해 나간 경우에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법 이론을 근거로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등 피고발인 58명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즉, 지난 80∼81년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광주진압군의 무력사용,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의 하야,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의한 국회 해산과 전두환 대통령 취임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 모두 정치적 변혁과정에서 새로운 헌법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고도의 통치행위로 본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로 요약됐던 검찰의 논리는 전직 대통령들의 거액 비자금 은닉 의혹과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5·18 특별법 제정 지시가 나오면서 단번에 뒤집어졌다.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에게 내란죄 등을 적용, 구속기소하면서 당초 통치행위라고 정리했던 일련의 사태들을 '국기문란을 목적으로 한 폭동'이라고 재규정했다. 2심 법원은 아예 공소시효 기산점을 87년 6·29선언으로 규정, 5공 정권의 모든 통치행위를 부정했으나 대법원에서 이를 81년으로 수정, 논란을 잠재웠었다. 헌법재판소도 96년 김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해서 발동한 긴급 재정경제명령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통치행위인 만큼 헌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배격하고 헌법 심사의 대상으로 삼은 전례가 있다.
/박진석기자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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