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유학 당시 파트타임제로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 병원 이름이 '갈바리아'이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 뜻을 알게 됐다. 그 병원은 말기 암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환자들이 마지막에 오는 곳으로 대부분의 환자가 거기서 생을 마감한다. 갈바리아(Calvaria)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이스라엘 예루살렘 북쪽 교외의 언덕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마지막 생의 의미를 나타내는 뜻으로 기억하고 있다.당시 그 병원에서 만났던 한국 사람이 있었다. 대장암으로 모르핀을 투여 받고 있었던 그 사람은 너무도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모르핀의 양을 늘려 고통을 끝내달라고 애원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를 보며, 얼마나 고통을 참기가 힘들었으면 처음 보는 내게까지 그런 부탁을 할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몇 주만에 병원에 되돌아와 그를 다시 만났는데 상황은 훨씬 나빴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개인병실로 옮겨지는 데, 그 역시 6인실에서 2인실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전과 달리 오히려 편안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내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다. "누구나 지고가야 할 인생의 십자가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십자가만 너무 무겁고 힘든 것 같다며 하나님께 십자가를 바꾸어 달라고 간청, 몇 번이나 바꿨지만 그때마다 무겁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답니다. 그는 마침내 자기에게 딱 맞고 편한 십자가를 찾은 후 하나님께 '이제야 맞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 십자가를 지게 해주세요'라고 말했지요. 하나님은 그렇게 하라며 '그런데 그 십자가는 처음 네가 힘들어 바꾸려던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들려주는 병자는 초췌했지만 나는 맑은 영혼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나를 너무 불쌍히 보지 마세요, 누구나 자기만의 십자가가 있는 거예요. 이제 마음이 편해요. 모든 것이…"라며 미소 짓던 그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말대로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할 고통과 아픔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감내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나의 고통만 크다고 탓하기 보다 모든 이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할 때 나의 십자가도, 우리의 십자가도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지 않을까 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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