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5호 봉사자입니다. 추운데 나와계시지 마세요."콜이 떨어지자 노란 밴이 꽉 막힌 도심을 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 성동구 용답동 구비구비 골목길을 빠져 나온 차는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의료원으로 향했다. 손님은 당뇨 때문에 다리를 절단하고 매주 3회 혈액투석을 받는 지체1급 휠체어 장애인 이순자(55)씨.
병원에 도착한 기사가 반가운 인사로 이씨를 맞았다. 차 뒷문을 연 기사가 조심스럽게 이씨를 휠체어 리프트에 태우고 버튼을 누르자 부드럽게 리프트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씨가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하며 휠체어 장애인석에 자리를 잡자 기사는 4개의 안전띠로 휠체어를 단단히 고정하고 머리받침대까지 꼼꼼히 챙긴다. "불편한데 없으시죠. 그럼 출발합니다."
정식 운행 한 달을 맞은 장애인콜택시 기사 안장현(安莊鉉·53·서울 송파구 가락동)씨. 요금 버튼 누르는 것도 깜박 한 그가 "돈 욕심 없어요,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하며 수줍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장애인(지체장애 6급)이다. 10여년 동안 중동 사막에 대역사를 일으킨 '산업 역군'이자 '전기도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5년 전 영등포시장의 노후한 변압기 보수 작업을 하다 감전돼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오른손과 다리가 마비돼 있더라구요." 그때부터 피눈물 나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무감각한 오른손을 꺾고 또 꺾었습니다. 힘을 쓰면 얼얼하지만 이젠 쓸만합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몇 년 동안 자신의 일부가 아니었던 오른손을 손님에게 들어보였다.
'장애인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쉽게 가속페달을 밟지 못한다. 시속 40㎞로 달리는 안씨를 승용차 한 대가 "빵빵" 하며 추월했다. "원 사람들하곤, 뻔히 장애인 탄 걸 알면서도 저러니…." 그는 비장애인의 작은 배려가 늘 아쉽다.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콜택시 기사 심사위원조차도 제 장애를 알고 오른손을 들어보라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는 운전 틈틈이 손님 이씨에게 지압법과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용기를 잃지 마라"고 위로했다. 이씨의 집 앞에 도착한 뒤에도 휠체어를 조심스럽게 내리느라 요금받는 것도 잊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쉴 틈도 없이 또다시 콜이 왔다. 다음 목적지는 수유리 국립재활원. 이날 안씨는 점심도 거른 채 자정까지 장애우 5명의 발이 됐다. 서울 전역을 돌았지만 일반택시 요금의 40% 수준이라 손에 쥔 돈은 1만9,600원. 기름값만 2만6,000원이니 적자다. 시가 95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그는 "너무 안쓰러워 요금을 안받는 일도 많다"고 했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내 이야기는 그만하고 장애인 콜택시 전화번호나 많이 광고해주세요." 1588―4388 /글·사진=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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