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직전 2,235억원(약 2억달러)이 북한에 송금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현대상선을 동원, 북한에 돈을 보냈다'는 대북 비밀송금 의혹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송금과정에는 국정원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돼 청와대 등 정권 핵심부 차원에서 결정, 주도한 것이라는 심증을 굳혀주고 있다.대출 누가 지시했나
산업은행이 4,000억원 대출을 승인한 것은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2001년 6월7일. 산은은 대출약정서에 차주인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의 서명도 받지 않고, 승인 당일 4,000억원 전액을 자기앞수표로 내줬다. 이러한 관행을 무시한 비정상적인 대출은 외압이 아니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의문은 정상회담 직전 북한이 현대의 개성공단 사업비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풀리고 있다. 대출·인출·송금이 이처럼 순식간에, 비밀리에 이뤄진 것을 보면사업비 지급은 당초 현대의 예정에 없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즉, 정상회담 성사에 사활을 걸었던 청와대가 북한이 갑자기 사업비 지급을 요구, 정상회담이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국책은행을 통해 현대에 돈을 대주는 무리수를 택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총재는 국감에서 "대출 당시 산은 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출을 지시했다'고 말했다"고 폭로, 청와대 배후설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외압의 당사자로 정상회담을 주도하며, 중국 베이징(北京) 등에서 북한의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자주 접촉했던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목되고 있다. 청와대 주도설이 사실이라면 과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러한 산은대출과 북한송금 여부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할 전망이다.
국정원 송금개입했나
현대상선은 4,000억원을 대출받은 뒤 2,235억원을 개성공단 사업비 명목으로 북한에 송금하고, 나머지는 자체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북송금 과정과 관련, 여권 한 고위관계자는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주일만에 2,000억원이 넘는 거액을 국내 외환 딜러들에게 포착되지 않고 달러로 환전하기 위해서는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국정원장은 임동원(林東源) 현 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여서 임특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국정원은 환전후 눈에 띄기 쉬운 현대의 대북송금 공식창구인 현대아산 계좌보다는 현대 해외지사가 설립한 역외펀드를 통해 북한 아태평화위원회로 돈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이 송금에 개입했다는 것 자체가 대북 송금을 '국가적 대사(大事)'의 일환, 즉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