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2,235억원을 북한에 준 사실이 확인되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가장래를 위해 이를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언급한 30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서울지검 수사팀은 물론 대검 수뇌부도 잇따라 회의를 열어 수사 여부에 대해 격론을 벌였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검찰은 물론 "수사 중단은 절대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서울지검 이인규(李仁圭) 형사9부장검사의 말처럼 시민단체의 기존 고발 사건이 배당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다음달 임기가 끝나긴 하지만 국정 최고 책임자인 김 대통령이 간접적이나마 대북 송금이 '통치 행위'임을 언급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가만있자니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측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 당선자는 이날 디스크수술을 이유로 견해표명을 하지 않았으나 그동안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강조해온 터다. 검찰이 그동안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표명한 이유도 노 당선자측 입장을 고려한 때문이다. 때문에 검찰이 잠시 주춤하는 것은 노심(盧心)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한 '시간벌기'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유창종(柳昌宗) 서울지검장이 이날 "전례 없는 일이라 우리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련자 사법처리와 법적용 문제도 검찰로서는 부담이다. 검찰 관계자는 "영미법에서는 '통치행위는 사법적 심사에서 배제한다'는 판례가 있다"며 "검찰도 12·12사태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리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또 "기소 못할 수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내부 의견도 전했다. 이 때문에 검찰내에선 현대상선과 산업은행 등으로 수사 범위를 축소하고 사법처리 대상도 최소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건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현대상선-국정원-북한 등으로 이어지는 '대북 루트'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을 경우 검찰 위상이 또 한번 추락하는 쓴 맛을 볼 수 있다며 "철저하고도 강도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검제 등 '후속타'를 대비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경우 검찰은 청와대 국정원 개입 여부 등에 대한 강도높은 수사와 함께 과연 대북 송금이 통치행위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집중적인 법률 검토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설 연휴기간 동안의 여론의 향배가 검찰 수사 여부는 물론 강도 조절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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