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2억 달러 대북 송금설이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북한 핵 파문에도 끄떡없던 남북관계가 그야말로 전면 중단의 기로에 섰다.이번 사건은 단순히 민간기업의 대북 송금 차원이 아니라 2000년 6월 정상회담이 상징하는 남북 최고 수뇌부간의 신뢰를 흔들 수도 있는 사안이다.
김대중 대통령으로선 햇볕정책의 명분을 크게 훼손당할 위기에 처해 있고, 6·15 공동선언을 토대로 살자고 수없이 강조해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생존 방법을 재검토해야 할 처지이다.
사실 북한에겐 이 사안의 공개 자체가 치욕에 가까운 일이다. 경의선 연결 공사 등 김 위원장의 '치적'이 모두 돈을 매개로 한 뒷거래의 소산이었다는 의혹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를 착수하는 순간 북한은 모든 문을 닫을 것"이라면서 "삽시간에 안보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 정권은 내부적으로 격랑을 맞을 수도 있다. 군부 등 강경파가 남한과의 비밀 거래를 비판하며 세 확대를 시도할 여지가 있다. 상대적으로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 등 대남 대화일꾼은 입지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현대상선의 지원금이 일단 김 위원장이 특별 관리하는 스위스 은행 계좌 등으로 입금됐을 가능성이 크고, 김 위원장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배달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 위원장 손에 들어간 돈의 액수가 우리 정부가 밝혀낸 규모보다 모자라는 상황이다. 이 경우 DJ 정부에서 국정원 주도로 구축한 대북 채널이 와해될 공산이 크다.
DJ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다짐한 노무현 차기 정부도 이번 사건에 발목을 잡힐 수 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노 당선자 측이 진실 규명에만 집착한다면 5년 동안 북한과 어떤 일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공조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미 행정부는 그 동안 남한의 대북 지원을 좋게 보지 않으면서 군비 전용 가능성까지 제기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대북 현금 지원이 사실이라면 미국을 북미대화로 유도하기가 어려워진다"면서 "노 당선자는 남남갈등과 한미갈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내달 금강산 육로관광 등 남북 경협 사업도 재검토 혹은 속도조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투자 혹은 지원을 확대할 대의명분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식량 비료 등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도 투명성 확보 및 분배 검증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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