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급격한 소비심리 둔화로 내수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주가가 연일 폭락하고 시중 자금이 채권시장으로만 몰리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소매판매가 4년 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고 종합주가지수는 14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불안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선호하면서 금값과 채권값은 연일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더욱이 올해 경제운용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수출마저 냉각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1월 무역수지가 2000년 1월(4억3,200만 달러 적자) 이후 3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라크전쟁 가능성으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이 달 원유 도입액이 2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들어 에너지 수입가격은 지난해 동기 대비 50% 이상 급등했고, 강추위로 석유제품 수입까지 크게 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유가는 1년 전 배럴 당 18달러(두바이유 기준) 수준에서 29일 현재 29.85달러로 치솟았다. 미국의 1월 소비심리가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달러 약세가 지속되는 등 향후 수출 여건도 암울하다.
재정경제부는 올해 국제유가가 당초 전망치인 연평균 25달러에서 30달러 선까지 뛸 경우, 물가는 0.5%포인트 추가상승,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추가하락, 경상수지는 40억 달러 추가악화가 예상되는 등 경제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29일 발표한 연두교서가 금융시장의 불안을 증폭시켜 달러 약세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내수 침체에다 수출까지 타격을 입을 경우 국내 경기 침체가 당초 예상보다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다 대통령직 인수위와 정부간 정책 혼선까지 겹쳐 경제 불안심리가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인수위와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 재벌 및 조세개혁 등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빚는 경우가 많아 새 정부 정책에 대한 대내·외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는 당초 가계대출 억제와 부동산 안정대책으로 올 상반기 내수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수출 호조로 이를 상쇄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라크전쟁의 불확실성이 쉽게 해소되지 않으면서 수출마저 위축될 조짐을 보이자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은 재정의 조기집행 외엔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은행 예금금리는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이미 '마이너스'에 근접한 상태이고, 세금 감면도 재정에 부담을 주는데다 국회통과 등 절차가 복잡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사회간접시설(SOC)과 건설사업 등에 대한 재정의 조기집행을 통해 경기부양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최근의 경제상황이 당초 전망보다 좋지 않다"면서 "더 나빠지면 재정을 조기 집행해 내수 위축을 막겠다"고 밝혔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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