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북중(현 전주고) 23기는 한 반에 50명씩 모두 150명이었다. 당시 전주북중은 공립이여서 학생은 전부 한국인이었지만 교장 이하 교사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전주북중 출신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건이 하나 있다. 일본인 선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한국인의 자존심과 기상을 한껏 높인 사건….전주북중 교사 가운데 노다(野田) 라는 역사 선생이 있었다. 그는 전쟁 중 부상을 입고 교직에 몸담은 상이군인 출신이었다. 그는 상급반 학생들에게는 지리를 가르쳤다. 당시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국말을 썼다간 바로 정학 처분을 받았다. 어떤 악질적인 일본인 교사는 화장실에 숨어있다가 소변을 보며 한국말을 하는 학생들을 적발하기도 했는데 노다 선생은 그런 부류에 속했다.
평소 '조센징'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던 노다 선생이 어느 날 우리 반에서 수업을 하다 말고 느닷없이 한글을 욕하기 시작했다. "한글은 글자도 아니다"며 포문을 연 그는 "도대체 위로 아래로 그었다가, 동그라미를 그리는가 하면 또 나란히 두 줄을 그어야 하는 등 한글은 과학적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원시적인 글자"라고 한글을 깎아 내렸다. 나를 포함한 우리 반 학생들은 흥분했다. 하지만 갓 입학한 1학년으로서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논의 끝에 우린 선배들에게 노다 선생의 망언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선배들은 즉각 노다 선생을 응징하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때 노다 선생의 망언에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는데 총대를 멘 선배가 바로 5학년의 이철승(李哲承) 선배였다. 이 선배는 잘 알려진 대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신민당 개혁에 앞장섰던 정치인이다.
당시 이 선배는 전교생을 통틀어 창씨 개명을 하지 않은 유일한 학생일 정도로 기개가 대단했다. 노다 선생이 5학년 수업을 들어와 책을 펴는 순간 이 선배가 벌떡 일어나 노다 선생을 똑바로 응시하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사 선생이면 역사를 가르치고, 지리 선생이면 지리를 가르칠 일이지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다니는 겁니까. 망언에 책임을 지고 당장 일학년 학급으로 내려가 사과하고 오시오."
뜻하지 않은 일격에 망신을 당한 노다 선생은 얼굴이 벌개졌다. 당시 전주북중 학생들은 모두 검도를 배우고 있었는데, 노다 선생은 잽싸게 교실 문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목검 중 하나를 들어 이 선배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농구부 주장을 할 정도로 몸이 탄탄하고 날렵했던 이 선배가 그냥 맞아줄 리가 없었다. 이 선배는 노다 선생의 목검을 양손으로 잡아채면서 오히려 노다 선생을 밀어 붙였다. 얼굴이 벌개진 노다 선생이 다시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교실 바닥에 보기 좋게 나자빠지고 말았다. 노다 선생은 힘으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평소 네 놈 사상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은 놈이 감히 일본제국의 상이 군인을 쳤으니 넌 군법회의 감이다"라고 협박했다. 노다 선생은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 선배는 노다 선생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뒤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교실 문을 당당하게 나섰다.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교무회의가 열렸다. 처음엔 군법회의 회부 주장이 많았으나 "중징계가 내려지면 동맹파업 등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날지 모른다"는 온건파의 말이 먹혀 들기 시작했다. 결국 이 선배는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노다 선생은 더 이상 막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이 선배는 학교는 물론 전주의 영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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