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대북 강경기조를 재확인함으로써 북한 핵 문제의 조기 해결에 어두운 전조가 드리워지고 있다. 특히 그의 연설로 북한을 보는 한미간의 시각차가 엄존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져 부시 정부와 한국 신정부의 대북 정책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북한의 공갈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부시의 대북 대응 기조는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부시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평화적 해결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대북 인식이나 접근법에서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연설을 통해 드러났듯이 부시에게 북한 정권은 국민을 공포와 기아 속에 몰아 넣는 폭압 정권일 뿐이다. 게다가 북한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핵 합의의 약속을 어기고 줄곧 핵무기를 개발해온 거짓말 정권이라는 게 부시의 인식이다. 그 만큼 민족 공존의 테두리에서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우리 정부의 시각이 미국에 먹힐 여지가 적다는 얘기다.
부시는 이날 핵과 생화학 무기의 개발을 추구하고 공갈 테러 대량살상을 위해 그런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를 '무법 정권'으로 불렀다. 지난해 '악의 축'발언 때처럼 북한을 꼭 집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부시 정부가 북한을 그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무법 정권의 위협에 개별적 처방을 내리겠다는 뜻을 밝힌 점이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오랜 시간을 씀으로써 364일 전 '악의 축'으로 규정했던 나머지 두 나라, 북한과 이란을 아주 교묘하게 이라크와 분리했다"고 지적했다.
그 같은 분리에는 이라크 공격 문제에 전념하기 위해 북한 핵 사태를 부각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숨어있지만 부시의 연설은 적어도 북한에 대해 무력 공격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해주고 있다.
물론 부시가 말한 북한에 대한 '다른 전략'은 외교적 해결이다. 부시는 "미국은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지역 내 이해당사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해 당분간 주변국을 통한 외교적 노력에 매달릴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부시는 외교적 노력의 목표를 북한에 핵 무기 개발의 참담한 교훈을 일깨우는 데 둠으로써 북한의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는 한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설 뜻이 없음을 명백히 했다.
우리 정부는 부시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가능한 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려 했다. 특히 북한의 핵 포기 시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을 언급한 점에 주목했다. 정부 당국자는 "올해 연두교서는 '악의 축'이 등장했던 지난해와 비교할 때 자극적이지 않고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이라크 전쟁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부시 대통령이 다른 위협에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도 "미국의 김정일(金正日) 정권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강하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이동준기자 djlee@hk.co.kr
■ 부시연설 北관련 내용
한반도에서 억압적 정권이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 살고있는 국민을 통치하고 있다. 1990년대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획득하지 못하도록 합의된 틀(제네바 핵 합의)에 의존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이 세계를 속이고 계속 핵무기를 개발해 왔음을 알고 있다.
오늘날 북한 정권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핵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과 세계는 공갈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평화적 해결을 추구하는 한편, 핵무기가 고립과 경제침체, 지속적인 고통만을 초래할 것이란 점을 북한에 보여주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지역국들과 협력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핵 야망을 포기해야만 세계로부터 존중 받고 국민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미국과 세계는 한반도의 교훈을 배워 이라크에서 더 큰 위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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