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씨름을 전혀 모르는 분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29일 오후 한국씨름연맹 임시총회가 열린 서울 타워호텔 본관 1층 프린스룸. 공석중이던 총재에 민주당 이호웅(인천 남동구을) 의원이 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총회장 밖에서는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민속씨름의 한 인사는 "그동안 정치적 실세라고 해서 총재로 영입했던 분들이 뭘 했지요. 있었던 팀조차 지키지 못해 해체하고 내분만 부추기지 않았습니까"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또 정치권 인사를 모셔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자탄의 소리도 들려왔다.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기자의 뇌리에는 90년대 상황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씨름계는 90년대 초 노태우정권시절 당시 실세로 통하던 엄삼탁씨를 수장으로 추대했다. 97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오경의씨, 현정부 들어서는 엄씨가 다시 총재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씨름계 인사의 항변처럼 최대 호황기때 8개팀에 이르던 팀이 3개로 줄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씨름계의 실세 모시기가 시작된 지 10년여가 지난 지금. 그 행태가 그대로 재연된 것이다. 민속씨름계 뿐이 아니다. 다른 체육단체에서도 차기 단체장 하마평에 정치권 인사가 심심찮게 오르내리고 있고, 줄서기가 시작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물론 씨름계가 정치권 인사를 또 영입했다고 해서 그 앞날을 부정적으로 예단할 수는 없다. 여러모로 힘겨운 씨름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민속'을 내건 스포츠의 성공을 기원하고도 싶다.
그러나 정치권 등의 미래지향적 개혁 움직임과 정반대로 10년전 과거로 회귀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가장 큰 우려는 팬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다. "실세(實勢) 좋아했다가 실세(失勢)했잖아요." 이어 열린 씨름인의 밤 행사에서 한 원로씨름인이 던진 한마디가 한동안 귓전을 울렸다.
박희정 체육부 기자 hj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