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스스로넷 미디어스쿨' 2층 학습실. 3명의 학생이 일곱 시간째 자리에 붙어앉아 대입 검정고시 준비에 한창이다.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앳된 얼굴의 자원봉사 대학생이다.쉬는 시간 10분동안 아이들은 신나게 장기자랑을 한다. "마술 보여드릴께요."고입검정고시를 준비중인 주환이(14)가 들어와 트럼프카드를 펼쳐 보인다. 한 장을 뽑아 섞은 후 다시 뽑으면 똑같은 카드가 나온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중학교를 다닌 상헌이(17)는 '미디어로 말하기' 수업에서 6㎜카메라를 제법 다룰 줄 안다. 포토샵을 열심히 배우는 현주(16)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꿈이다.
2002년 문을 연 '스스로넷 미디어스쿨'은 서울시 지원을 받는 대안학교로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만 18세까지의 '탈학교' 청소년을 받는다. 요즘은 부모의 지원 아래 적극적으로 이곳에 온 아이들이 눈에 띈다. '중국이 앞으로 번창할 것'이라는 부모의 의견에 따라 화교학교에 다녔던 중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엽기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어 이곳에 왔고 상헌이도 부모님이 정규 학교 대신 선뜻 이곳을 보냈다. 상헌이는 "대안학교 학생들을 '문제아'나 '양아치'로 보는 시선이 제일 괴롭다"고 말한다.
중호는 "일반학교 친구들도 다 여기 오면 좋겠다"고 말한다. 학생은 13명인데 선생님은 자원봉사 대학생을 포함해 모두 16명이다. 선생님들은 학생과 반나절 이상 '인생상담'을 나누기도 하고 한달에 한 번 카페에 모여 수업에 대한 불만과 건의사항도 듣는다.
이 발랄한 아이들도 내년 4월 검정고시를 앞두고 얌전하게 공부에 몰두한다. 학력인정을 받기 위해서다. 일종의 통과의례로 여기고는 있지만 '학력'의 기준에 대해 할말은 있다. 중호가 볼멘 소리로 한마디 한다. "일반학교에서는 국·영·수를 배워요, 우리는 대신 미디어를 통해 희망을 배우잖아요."
대안학교, 어디까지 왔나
대안학교는 크게 두 가지다. 교육부에서 지정한 대안교육특성화학교는 정규교과목을 이수하고, 학력인정을 받는다. 전남 영광의 영산성지고,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 등 전국에 13곳이 있으며 대부분 지방의 기숙형 학교다. 서울에는 시교육청 관할에 위탁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세 곳 있다. 이곳에서 교육과정을 마치면 다니던 학교서 졸업장을 준다.
학력인정이 되지않는 학교는 서울만 해도 대안교육센터 소속 8개 학교를 포함, 11개다. 최근에는 은평야학이 '씨앗학교'로, 남부야학이 '꿈꾸는 학교'로 바뀌기도 했다. 실제로는 사설학원이나 수련원에 가까우면서 '대안학교'를 내거는 학교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대안'을 찾는 열기가 그만큼 뜨겁다는 증거다.
스스로넷 미디어스쿨 차용복(車龍福·33) 교사는 "우리 학교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자발적으로 학교를 선택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에는 학교와 가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상당수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김찬호(金贊鎬·41)부소장은 "비행청소년과는 분명 다르고 선행(先行)학습이 일반화하면서 학교에서 좌절하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거기에 가정문제까지 겹치면 인생에 대한 꿈도, 희망도 없이 무기력해지므로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재정지원, 학력인정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안정적인 공급이 큰 과제다. 스스로넷도 교사 중 절반이 자원봉사 대학생이다. 무한정 이들의 선의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게 교사들의 고민. 한 대안학교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 같은 교육체제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나중에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도 말한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올 9월 개교 분당 "이우학교" 공동대표 정광필씨
대안학교가 대안이 아닌 현실이 되도록 애쓰는 이들이 있다. 올 9월 개교할 경기 성남시 분당구 '이우(以友) 학교'의 공동대표 정광필(鄭光弼·45·사진)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이우학교는 정 대표 등 교육운동가들과 강지원(姜智遠)변호사(전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 이명현(李明賢)서울대 철학과교수(전 교육부장관)등이 1997년부터 뜻을 모은 교육공동체운동의 산물이다.
이우학교는 '학력이 인정되는 도시형 대안학교'로 시작한다. 정 대표는 "산골형 기숙학교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지만, 도시에서 학력인정기관으로 성공한다면 대안 교육 방식의 확산이 더 쉬워진다"고 말한다. 물론 시골보다 20배가량 비용이 많이 들었고, 지역 교육청 등에서 수많은 절차를 거쳤다. 정 대표는 "관련서류만 해도 라면박스로 세 박스가 넘을 것"이라며 웃는다. 그간 쌓인 노하우를 다른 교육운동가에게도 전수하여 대안학교의 일반화를 도울 계획이다.
일반 학교처럼 국민공통교과목을 모두 가르치지만 교수법은 판이하다. 아이들 스스로 홈페이지(www.2woo.net)로 교과과정을 예습, 다른 아이들을 지도하게 한다. 가르치면서 더 많이 배운다는, 이른바 '자기주도적 학습'의 원리다. 또 하루에 여러 과목을 배우는 대신 한 학기동안 4∼5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남다른 교육과정 덕에 '영재학교'라는 오해를 받아 극성 학부모의 입학문의도 쇄도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우리의 목표는 다르다"고 강조한다. 생태적 관점에서 도시를 설계하는 도시공학자, 효율과 정의를 조화시킬 수 있는 협동조합 운동가나 경영인, 조각난 지식을 소통시킬 수 있는 철학자 등 편협한 지식 대신 상생의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서울대 철학과 1학년때 이른바 '긴급조치' 위반으로 제적당한 뒤 1981년부터 생산현장 등 노동운동에 투신했으며, 현 민주노동당 전신인 '진보정당추진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노동운동이든, 정치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을 제대로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에 교육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또다른 교육의場 인식을"/강 태 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대안교육은 공교육에 맞서는 의미를 지니고 출현했다. 본래 대안교육은 의무적으로 또는 독점적으로 주어지는 공교육의 구속을 벗어나고자 할 때 찾게 되는 '출구' 로서 의의를 지녔다. 이러한 본래 의의는 오늘의 대안교육에서도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우선 대안교육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안교육을 일반 학교가 감당하기 벅찬 아동이나 학생들을 위한 '특수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대안교육기관이나 시설이 그러한 학생들에게 제2의 교육적 둥지가 되어주는 것은 사실이며, 이는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대안교육의 지극히 작은 부분이다.
이 부분만을 주목하거나 과장함으로써 생겨나는 교육관은 대안교육의 본질을 해칠 만큼 해로울 수 있다. 이를테면, 대안학교가 이웃에 설립되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의 시위가 일어나는 사태는 그와 같은 본질의 곡해에서 비롯된다. 대안교육 행위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교육을 찾아 다양한 교육의 장을 벌이는 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안교육이 공교육과 대조되는 점에 집착하여, 대안교육이라면 마땅히 공교육과 대립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교육적이지 못하다.
대안교육기관이나 시설이라면 당연히 일반 학교와는 다른 교육 활동에 주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교육 전통을 매우 가볍게 여기는 일이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교육적 경험을 학교교육으로 집약한 것은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즉, 학교교육의 가치는 인류사가 입증하는 것이다. 이 가치를 인정한다면, 대안교육의 본령은 일반 학교교육의 성질을 무조건 벗어버리는 데 있지 않고 그 교육의 정수(精髓)를 포용하면서 나름의 교육 이상을 아울러 추구하는 데 있다.
반면, 이러한 본령 추구는 대안교육을 공권에 대한 도전이나 교육적 상도를 벗어나는 일로 보기보다 사회적 교육 역량을 키우는 통로로 보는 적극적인 교육정책 행위를 통하여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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