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는 가벼운 멜로( '클래식' )와 진득한 드라마( '이중간첩' ), 외화는 현란한 중국 무협( '영웅')에 할리우드 오락물( '캐치 미 이프 유 캔' ). 올 설 연휴 극장가의 4강이다.만약 소설과 다른 영화 주인공, 라이벌 감독이 이들 영화를 봤다면 어떤 반응일까. 가상 편지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캐치미 이프 유 캔-'A.I'의 사이보그 소년 데이비드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주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
팬암 항공 조종사, 하버드 수석졸업 의사, 버클리 법대 졸업생 등 사칭. FBI 사상 최연소 지명수배자라는 '명예'를 안았던 희대의 사기꾼 프랭크 아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사기극 보고서.
"레니 형, 스필버그 감독은 내가 등장하는 미래 영화나 톰 크루즈 형이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SF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기억되고 있죠. 60년대 이야기지만 여전히 감독의 취향이 느껴져요. 그는 과거 얘기에서도, 미래 얘기에서도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를 그리죠. 형이 어머니가 재혼해서 살고 있는 집을 들여다보며 이복 동생을 바라보는 장면은 가장 '스필버그적'인 장면이 아닐까요. 형은 폼잡고 무게 잡는 '갱스 오브 뉴욕' 같은 영화보다는 CF 모델처럼 밝고 경쾌한 모습이 어울려요. 아마 뭉클한 드라마의 강도가 약해도 형의 모습에 반한 누나들이 남자친구를 이끌고 극장을 찾을 것 같네요. 부러워요!"
※주의: "이거 당신 목에서 떨어진 것?" 프랭크의 여자 꼬시기 수법은 잘못하면 스토커 취급당한다.
■영웅- "와호장룡"의 리안 감독
감독/장이모 주연/리롄제 장만위 량차오웨이
춘추전국시대, 후에 진시황제가 될 영정 앞에서 그를 시해하려던 자객 셋(옌지단, 량차오웨이, 장만위)을 격파했다고 주장하는 지방관리 무명(리롄제)과 영전의 설전과 진실이 다양한 화면으로 변주된다.
"제가 대만에서 태어나 24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데 반해 장이모 당신은 중국서 태어나 방직공장을 다니며 고생 많이 하셨죠. 사람들이 내 영화 '와호장룡'을 의식했냐고 물으니 형님이 답했죠. "언제 찍어도 누군가와 비교 되므로 나는 내 식대로 찍었다"고. 형님의 '영웅'은 저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탐미주의적 구상과 색채가 더 짙습니다.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반면 시황제의 전체주의에 대한 옹호 때문에 비난이 적잖죠. 그러나 나는 이게 궁금합니다. 저오룬파와 장쯔이의 대나무 숲 대결 장면과 '영웅'에서 은모장천과 무명의 창과 칼 대결 중 어느 것이 명장면으로 기억될지."
※주의:무사들의 현란한 몸놀림, 피아노 줄 안 매고는 따라 하지 말 것.
■이중간첩-"공동경비구역 JSA"의 오경필 중사
감독/김현정 주연/한석규 고소영
1980년, 소좌 림병호(한석규)는 동베를린을 통해 위장귀순, 남한 정보기관에서 암약중이다. 그러나 그를 배신자로 몬 북한과 간첩으로 몰려는 남한의 음모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림동지, 나는 여전히 당신을 동지로 부르겠소. 당신과 나, 체제의 희생자라는 점은 매한가지요. 나는 '이중간첩'을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소. 같은 분단을 다뤘으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나는 이수혁 병장과 은밀한 감정을 나누었소. 하지만 당신은 사랑하는 여성 윤수미(고소영) 동지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습디다. 그건 분명 과업을 잊지 않은, 그러면서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당신의 내면 풍경이라 생각되오. 분명 과감하고 용감한 작법이나, 남한 인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리 공화국에서는 왜 이렇게 못 만드네"하며 내가 초코파이를 먹는 장면에서 박장대소하던 그 관객들 말이오."
※주의:음, 농구화에 양복을 입었으니 간첩? '오픈' 된 스토리이니 쓸데없는 추리는 낭비.
■클래식/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소녀
감독/곽재용 주연/손예진 조인성
연극반 선배 상민(조인성)을 사랑하지만, 단짝 친구에게 빼앗긴 소심한 지혜(손예진). 낡은 편지함에서 발견한 편지에서 60년대 여고생이었던 엄마 주희(손예진)와 준하(조승우)의 첫사랑을 엿본다.
" '클래식'의 주희를 보고 있으면 내가 다시 환생한 것 같아요. "너, 저 산 너머에 가본 일 있니"라고 나는 소년에게 물었고, 우리는 원두막에서 무를 뽑아 먹은 적도 있었지요. "어, 맵고 지려" 나는 이렇게 말하며 무를 집어 던졌지요. 주희가 비 그친 원두막에서 수박 먹는 모습을 보니 내 옛 일이 떠오르네요. 요즘 젊은이들이 '인스턴트식 사랑'을 한다고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촌스러운 구성과 닭살 돋는 대사, 그리고 말 못한 채 끙끙 거리는 청춘 남녀의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키득키득 웃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결국 준하가 울면서 주희를 떠나는 대목, 준하가 목걸이를 찾으러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는 40대 아저씨들까지 눈물을 흘리던걸요. 방식은 인스턴트라도, 감정만은 밤새 고아낸 '곰탕'이 아닐까요?"
※주의:이 영화의 대사를 편지나 속삭임에 인용했다가는, 연인 혹은 사회에서 '왕따'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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