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을 향해 뻗어 내린 구레나룻, 각진 턱, 깊은 눈빛…. 해양 블록버스터 '블루'의 김영호(38)에게서는 사내다운 향취가 풍긴다. 단정한 양복 차림이지만 그 속에서 복싱과 태권도 철인3종 경기로 다진 몸매가 느껴진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작전담당 이태현 대위. 같은 부대의 김준(신현준) 대위와 강수진 소령(신은경)과 함께 극을 이끌고 가는 주인공이다.흔히 'FM'(야전교범)이라 불리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인이 그다. 동지이자 경쟁자인 김준에게 우정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강 소령을 향한 애틋한 마음도 내성적 성격 탓에 드러내지 못한다. "답답했다. 군인다운 군인인데 열등감을 느껴야 하고,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 하고 다 눈으로 말해야 했다. 그런 감정을 한 번도 폭발시키지 못했다."
힘들었던 건 또 있다. 잠수 촬영으로 엄청나게 체력이 고갈됐다. "물 속 장면은 대역이 안 된다. 직접 들어가봐야 어떻게 감정을 처리할 것인지 아니까, 하루 종일 수심 5m 물 속에 있어야 했다." 얼굴을 드러낸 특수 헬멧을 급조한 탓에 본드 냄새가 강렬했다. 어지러운 머리로 감정에 몰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김준의 잠수복 연결줄과 서로 엉키는 상황은 특히 집중력을 요구했다. 누군가는 생명을 희생해야 하는 아찔한 순간. "우정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 상황에서 태현이는 죽고 싶었다. 5m 물 속에서 호스를 자르는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세 시간을 호스를 붙들고 있었다. 여러 생각이 엇갈렸다. 마침내 친구를 죽이고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눈감을 때 편했다."
"신현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빛을 덜 봐서 손해본 것 아니냐"고 했더니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괜찮다"며 웃지만 눈가에 서운함이 느껴진다. 주인공이면서 포스터에서 자기 모습이 빠진 것도 무척 속상했으리라. "그래도 만족한다. '저 사람은 딱 이태현이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는 되니까."
김영호는 어디서 본 듯한, 그러면서도 낯선 느낌의 배우다. '선과 악의 눈을 다 가졌다'와 '어디서 깡패를 데려왔느냐'는 말을 동시에 듣는다. 강변가요제 본선에 나갈 만큼 노래를 잘하는 덕분에 청주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오디션에 합격해 무대연기로 들어섰다. 영화 데뷔작은 '태양은 없다'(1998년). 정말 튀지 않은 정우성의 복싱 트레이너 역을 해냈다. 덕분에 표민수-노희경 콤비의 KBS 드라마 '바보같은 사랑'(2000년)에서 잊지 못할 주인공 용배가 됐다. 김영호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도 볼 수 있다. 동대문을 주름잡은 주먹 이정재. "사람들은 내가 액션연기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이 드라마가 처음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 "블루"는 어떤 영화
꼭 감독의 의도나 카메라 시선에 맞춰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이런 작은 반란을 시도하지 않고 마냥 관습적으로 본다면 이정국 감독의 '블루'는 분명 군(해군)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오락물의 상투적 반복이 된다. 쿠바 구딩 주니어가 주연한 '맨 오브 오너'를 기억한다면 해군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한국영화로는 '대단한 성과'라고 말하는 수중 액션도 소박하다.
'블루'는 외형상 우정이 주제다. 그 우정은 이 세상 무엇보다 진하고 기꺼이 생명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소중하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영화는 정반대 성격이지만 늘 함께 한 죽마고우 김준(신현준)과 이태현(김영호)을 나란히 해군 특수잠수부대인 SSU 장교로 만들었고, 그들로 하여금 홍일점 동료 강수진(신은경)을 놓고 삼각관계에 빠지게 했다.
첫눈에 수진을 사랑하게 됐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표현을 못 하는 이태현. 어느날 그 사실을 우연히 알고는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수진을 일부러 멀리하는 김준. 그럴수록 수진은 더욱 그를 사랑하고, 이태현은 그 모습에 안타까워 한다.
'블루'는 이런 종류의 추모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 살아남은 자에 대한 미화이다. 이 때문에 카메라의 시선은 늘 김준에게 맞춰져 있으며 이야기 전개도 그의 진술에 의존한다. 영화는 그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웃고, 친구를 위하는 그의 진한 마음에 슬퍼한다. 출세지향주의자인 해난구조대장 최형수(이일재) 중령같은 극단화된 주변인물 역시 그의 휴머니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됐다.
신현준이란 스타의 상품가치를 감안하면 상업영화인 '블루'로서는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야말로 영화를 상투적 영웅주의에 빠지게 한다. 괴짜이면서도 최고 잠수사이고, 정의와 우정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릴 줄 아는 멋진 김준. 그 모습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블루'는 스스로 설정한 영화의 중요한 또 다른 축인 이태현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친구라고 생각이 같을 수는 없잖니" "한번 너를 이기고 싶었는데 그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단순한 열등감으로 비치게 했고 그의 마지막 선택마저 아름다운 희생과 반전으로 만들어 버렸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이태현에게 그 모든 것은 김준이 미화한 우정도, 희생도 아닐 수 있다. 감독이 제공하는 시선에서 벗어나 보면 '블루'는 더 괜찮고, 그래서 더욱 아쉬운 영화다. 2월7일 개봉. 15세 관람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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