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 협력사업이란 취지를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생태계를 파괴하면서까지 졸속으로 추진할 필요는 없잖아요."동해선 남북철도 도로 연결공사 구간인 강원 고성군 명파리의 최전방 초소. 철책선 너머 비무장지대(DMZ)에는 동해안을 끼고 폭 7m로 닦여진 임시도로가 남북의 만남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지만, 흥분도 잠시. 이 곳은 때아닌 환경파괴 논란이 제기되면서 DMZ 개발과 생태계 보존 사이에 새로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동해 유일의 해안 퇴적 경관
"이곳은 바로 동해에선 거의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천혜의 해안가예요." 황호섭(黃鎬燮) 환경연합 생태보전팀장이 가리킨 DMZ 내 동해 연안으로 호수와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졌다.
구름이 잔뜩 끼고 가랑비가 뚝뚝 듣는 궂은 날씨 속에서 구선봉, 만물상, 부처바위 등 해금강이 아스라히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동해바다에 어울린 모래사장에 이어 육지 가까이로 갈수록 풀들이 자라난 평지와 잡목의 구릉지대가 연이어 이어졌다. 이 일련의 배치를 두고 김귀곤(金貴坤)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는 '유니크(unique)한 곳'이라고 말했다.
모랫가와 구릉지대 사이는 모래가 퇴적돼 형성된 해안사구와 논밭이 변한 해안 습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해안사구에는 해당화, 갯메꽃, 갯그렁 등의 습지 식물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으며 해안습지대에서는 갈대, 달뿌리풀과 함께 오리나무, 버드나무가 자라나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김귀곤교수는 "동해선이 지나는 이곳의 해안사구는 전형적인 해안퇴적지형으로 동해에서 그 원형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며 "특히 사빈(砂濱·모래해안지대), 사구(砂丘·모래언덕), 석호(潟湖·해안호수), 습지, 산림이 체계적으로 형성돼 해안의 퇴적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고 설명했다. 구선봉 바로 밑에 자리잡은 둘레 3㎞의 감호도 유일하게 남은 자연상태의 석호라는 것.
그 넓은 동해안에서 해안 퇴적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 이 곳밖에 없다는 것은 무자비한 개발이 남긴 상흔이다. 돌아가는 길, 고속도로 주변으로 몇 평 남짓한 폭으로 남아 있는 동해안의 모래변이 더 없이 초라해 보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안창희(安昌熙) 경기북부 환경연합 사무국장은 "고속도로가 동해안에 바짝 붙어 건설되면서 동해안의 지형은 완전히 망가진 채 뼈마디만 남은 앙상한 해안이 되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남북 협력사업 앞에 무너질 위기
그러나 이런 독특한 자연경관도 '시급한 남북 협력 사업'이란 대의 앞에서 물거품이 될 처지에 몰렸다. 지난해 9월부터 착공된 동해선이 강원 고성군 저진검문소 부근에서 출발, 통일전망대를 지나 이곳 해안퇴적지대를 관통할 예정이기 때문.
현재 임시도로가 닦여진 동해선 구간은 각 분야 전문가 10여명으로 꾸려진 환경·생태조사단이 환경영향평가를 진행 중에 있어 최종 노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조사단원이나 정부 당국자 중 현 계획노선의 골격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사단장이기도 한 김귀곤교수는 "노선을 해안지대를 피해 내륙쪽으로 돌릴 필요가 있지만, 남북간에 연결 합의지점이 이미 설정돼 있어 노선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듣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초에는 통일전망대와 DMZ 통문 사이의 구릉지 2.8㎞ 구간 가운데 1㎞ 이상이 폭 10m, 깊이 1m 가량이 파헤쳐져 조사단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계획노선 상의 위치였다. 조사단측이 환경영향평가도 끝나지 않았는데 공사가 진행됐다며 반발하자 건교부측은 환경영향평가를 위해 지뢰제거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길 위로 도로가 나는 것은 기정 사실화한 상태다. 실제로 수풀로 덮힌 이곳에 길이 난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다.
환경부 관계자는 "남북간 합의가 결부된 문제인데 지금 와서 노선을 바꾸기가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사단 내부에서도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대로 가는 데 조사단이 들러리만 서는 꼴이 되지 않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동해선은 또 해안지대 관통문제 뿐 아니라 도로 추가 건설, 출입국관리시설(CIQ) 위치 문제도 제기된 상태. 서재철(徐載哲)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민통선을 지나는 기존 군사용 도로와 현재 닦여진 임시도로를 활용하면 금강산 육로관광객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며 "도로 문제도 재고해야 하는 등 환경 저감대책을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데 당국은 환경문제는 안중에도 없이 동해선 조기 완공에만 혈안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동해선 구간은 앞으로 무수히 벌어질 '남북 협력사업'이란 대의와 'DMZ 환경파괴'라는 충돌 사이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고성=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환경조사 참가 녹색연합 서재철씨
"이번에는 끝까지 딴지를 걸어볼랍니다."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사업의 환경생태조사단에 참가하고 있는 서재철(徐載哲·사진)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요즘 착잡한 심정이다.
남북 협력사업이란 명분 속에서 환경 문제를 제기하기도 힘든 판에 북핵 위기라는 메가톤급 태풍에 DMZ 보존은 아예 뒷전으로 물러나 있기 때문. "나중에 DMZ 생태계가 파괴되며 사업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동안 너는 뭐했냐는 소리를 들을까 우려돼요."
서국장이 더욱 아쉬워하는 것은 동해선을 급히 건설해야 할 이유도 크지 않다는 것. 경의선 추진 때는 남북 화해 사업이란 상징성이 워낙 크고 개성공단 착공 등으로 시급히 건설돼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 때문에 환경단체들이 대폭 양보했지만 동해선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 서국장은 "금강산 육로관광에 사용될 동해선은 현재 닦여진 임시도로로도 충분해 차분히 준비하면 된다"며 "결국 조속히 성과를 내겠다는 욕심 때문에 50년간 보존된 DMZ 생태계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격이다"고 말했다. 이번만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잡고 있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남북관계로 DMZ 보존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송용창기자
■사빈·사취·사주·석호… 다양한 해안지형 간직
DMZ내 동해선 구간 지역은 다양한 해안지형이 훼손되지 않은 채 체계적으로 발달돼 자연상태로 남아있는 유일한 해안지대다.
사빈(sand beach)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모래 해안 지대. 그 다음에 바닷물에 쓸려온 모래가 퇴적된 좁고 기다란 퇴적지형인 사취(sand spit)가 이어진다. 사취가 성장해 작은 만을 완전히 가로막으면 사주(sand bar)라고 부른다. 이런 사주에 의해 가로막혀 생긴 호수가 석호(lagoon)다. 감호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자연 상태의 석호다. 또 사취가 성장해 섬과 연결되면 육계사주(tombolo)라고 부르는데, 이곳 중앙부에 자리잡은 송도가 육계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돼 있다.
해안사구는 바닷물과 강 하구의 물결에 밀려온 모래가 바람의 작용 등으로 낮은 구릉 모양으로 쌓인 지형. 동해선 구간에는 배후 산지에서 공급되는 지하수 등으로 수분이 풍부해 해당화군락, 갯메꽃군락 등으로 덮혀있다.
또 석호는 시간이 지나면 토사가 지속적으로 흘러들어 자연적으로 매립돼 습지화되는데 이를 구석호라 부른다. 이런 지역은 대부분 개간돼 농경지로 이용되지만 동해선 구간에는 자연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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