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댐 계획이 물길을 막기도 전에 순박한 촌로들의 마음을 둘로 나누고 있었다. 지리산 백무동 자락에 나란히 앉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역감정이 서슬 퍼랬을 때도 "형님" "아우" 하며 열 집에 서너 집은 혼례가 오고 갈 정도로 정이 두텁던 두 마을이다. 3년 전 두 마을 사람들은 똘똘 뭉쳐 '문정댐'으로 불리던 지리산댐 건설을 막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마천댐'으로 둔갑한 옛날 그 댐 이야기가 다시 나온 뒤 분위기가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몇 년 새 인심이 변한 걸까. 주민들은 마치 세뇌를 당한 듯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23일 산내면 실상사 앞에서 만난 노인들은 "댐은 무신 댐"이라며 톡 쏘아붙였다. "그게 언제적 이야긴디 아즉 하는지 몰라. 댐 지으면 안개 껴서 못산다고 들고 일어난 지가 벌써 몇 년이여." 손가락으로 헤아리던 노인은 "요 근자에 마천 사람들 몇몇이 댐 하자고 하는가 본디 어림 없재"라며 친구의 동의를 구하는 눈치다. 잠자코 있던 옆 노인도 "다 망할 놈의 '루사'인지 하는 태풍 땜시 그런거 아녀"라며 시큰둥해 했다. 산내 사람들에게 댐은 잊고싶은 과거였다. 1998년 문정댐 건설 계획이 추진될 당시 인근 읍면이 들고 일어나 100만인 서명을 하는 등 떠들썩하게 반대해 백지화했기 때문. 한마디로 "정부가 한 약속인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산내 사람들 공통의 믿음이었다.
그렇다고 최근 흘러나오는 댐 이야기를 '불구경' 하듯 지켜보진 않았다. 정인철(60·산내면 장항리)씨는 "나가 20대부터 잊을만하면 댐 이야기가 나왔응게. 댐을 지으면 농사도 못 짓고 건강에도 안 좋다 안하요"라고 걱정했다. 불편한 심기도 드러내 보였다. "옛날엔 초등학교는 마천에, 중학교는 산내에 있어서 다들 친구 사인디. 국책사업을 일개 군수가 쇼를 하는 바람에 마천 사람들이 댐 없으면 못 살겠다고 하니 부아도 나지만 한편 가엾기도 하요." 김모(56·여)씨는 "몇 대를 한 가족처럼 지냈는데 자기들만 살겠다고 댐을 지으면 환경이 파괴되는데 이웃 주민들은 다 죽으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상사 주변에 귀농을 한 50여 가구 새내기 주민들은 더 절박했다. 99년 정착한 최석민(43)씨는 "생태계가 파괴되고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돼 애써 가꾼 지역대안공동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댐 때문에 불거진 지역감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한 주민(65)은 "짓지도 못헐 댐 땜시 마천 친구를 목욕탕에서 만나도 께름칙한 것이 이러다 영영 갈라서는 건 아닌지 모르겄다"고 답답해 했다.
하지만, 산내에서 차로 2분이면 닿는 마천 마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24일 만난 경상도 버스기사는 "산내 사람들 '사돈이 땅 사면 배 아프다'는 식으로 반대 하는기라. 지역경제가 살아나는데 마천 사람은 댐 들어오면 조타 카지"라고 말했다.
마천면 소재지는 아직 지난해 태풍 루사가 할퀸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중학교는 폐교됐고 찢긴 산등성이 아래 유실된 논밭엔 복구작업이 덜 끝나 있었다. "저 너머에서 4명이 죽었다"며 비에 쓸려가 황토길이 난 산을 가리키던 마천발전협의회 허태오(55) 회장은 "댐이라도 지어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걱정한 뒤 "산내 사람들이 마천의 아픔을 알아? 우리 마을 일 우리가 결정하는데 왜 참견이야"라고 목청을 돋았다.
마천 사람들이 갑자기 댐 건설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지난해 태풍 루사로 8명이 숨지고 농토의 4분의 1과 100여 채의 집이 비에 쓸려간 뒤부터. 당시 복구 현장을 방문한 천사령 함양군수는 "댐 건설만이 수몰민과 마천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고, 한사코 댐을 반대했던 주민들도 군의 댐 건설 계획에 수긍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방에서 만난 마천면 주민들은 저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국가" "함양 발전의 필수" "태풍 피해 보상 차원" 등 댐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한 노인은 댐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실상사를 꼬집어 "정감록에도 '실상사 지상천년(地上千年), 수장천년(水葬千年)'이라 안 했나"라고 했다. 어떤 이는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댐의 규모를 설명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가 거창한 명분에만 묶여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임명근(80)씨는 "나이 들어 농사도 못 짓고 얼마 몬 사는데 빚도 갚고 아이들이라도 편하게 해줄라믄 보상이라도 받아야지"라고 속내를 내보였다. 김종근(71)씨가 되받았다. "몇 해 걸러 닥치는 산사태가 무서워 떠나고 싶어도 땅이 안팔리니…. 태풍 이주비는 형편없고, 댐 이주비는 세꼽(3배) 반을 더 준다 캅디다." 그래서 댐 건설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여론이 영 마뜩찮은 표정들이었다.
산내면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한몫 했다. 김윤오(45)씨는 "바늘 꽂을 땅도 없어 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면서 "상류인 전라도 운봉이나 아영에서 소·돼지 똥물이며 폐수를 쏟아내 여름엔 마음 놓고 멱도 못 감는다"고 불평했다. 한 노인도 "전라도쪽 지리산은 다 개발했어, 뱀사골만 가도 별천지야. 지들은 거석(개발) 해놓고 우리만 하지 말라는 심뽀는 뭔교. 또 변강쇠 고향이 마천인데, 옹녀바위라고 만들어놓고 돈 버는 건 전라도 것들"이라고 거들었다.
노인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다방에 있던 다른 손님이 끼여 들었다. "조상이 몇 백년 일궈온 땅이 물에 잠기는데 머이 조컷어. 함 봐라, 마음만 들뜨게 하고 또 실망 할끼라." 느닷없는 반대의 목소리에 다방 안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그의 말처럼 때 아닌 댐 논란이 산내와 마천을 갈라놓고 있지만 정작 댐 건설 계획은 확정된 게 없다. 함양군이 지난해 정부에 댐 건설을 건의했지만 예산을 못 따냈다.
하지만 산내와 마천 두 마을 사람들의 속내엔 댐 문제에 대한 해답이 이미 있었다. "태풍 때문에 다 잃었는데 다른 거슥(것)이 있으면 우리도 안 지어라(마천)" "오죽하면 댐을 지을라 하겄어, 사람이 죽어나가고 농사는 답이 안나옹게 그라재. 차라리 수재민 이주 대책이라면 우리가 발벗고 도울 것인디.(산내)"
/남원 함양=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마천댐의 원래 이름은 문정댐이었다. 문정댐 계획은 1998년 한국수자원공사가 부산과 경남권의 식수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했다. 높이 107m, 길이 417m의 대형 댐이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에 들어서고 마천면 일대 400여 가구가 물에 잠길 예정이었다. 국립공원 1호이자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일대에 댐 건설 계획이 알려지자 마천, 산내 등 지역 주민과 전국의 200여 시민사회단체, 불교 등 종교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리산생명연대 등은 "지리산댐이 생태계 파괴와 환경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100만인 서명운동과 국토순례, 지리산 위령제 등을 벌였다. 결국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는 기존의 식수원으로도 부산 경남권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하다는 '낙동강 물 이용 조사' 결과가 나오자 댐 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하지만 지난해 태풍 '루사'가 지리산 일대를 강타하자 댐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수해 복구 현장을 방문한 천사령 함양군수의 "마천댐 건설 추진" 발언은 지난해 11월 함양군 장기종합계획에 마천댐 건설이 포함되면서 구체화했다.
지역주민과 지리산생명연대 등 시민단체는 다시 반대운동에 돌입했고 함양군은 주민들을 상대로 여론몰이에 들어갔다.
/고찬유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