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저는 어제 대학 합격통보를 받은 고3 남학생입니다. 할아버지가 간암 말기로 미구에 임종을 맞으시게 되어 저를 찾으신다 합니다. 장손인 저는 어려서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주 찾아뵜으나 지난 3년 동안은 입시준비로 세배 때 밖에 뵌 적이 없습니다. 몸이 많이 상했다 하시는데, 뵈면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그저 '쉬, 쉬'하실 뿐 제가 처신할 바를 가르쳐주시지 않으시니 어떻게 하지요? (경기 평촌 학생)
답>귀여워 해주시고 믿어주시던 할아버지를 잃게 된다니 얼마나 슬프고 당황한 심정입니까? 이제 그런 분을 마지막 뵙는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그 분을 편케 해드려야 할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씨가 갸륵합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죽음이란 자기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돼 그만큼 생소하고 어색한 법이지요.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만 오래오래 살 것 같아 죄책감도 느끼지요. 또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마저도 두렵게 느껴집니다.
할아버님은 세상에 남아 당신을 이어 나갈 장손을 마지막으로 보시고 정을 나누고자 하시는군요. 대학에도 입학했으니 이제 당당히 가 뵈어야겠지요. 부모님이 아무리 할아버지 임종을 당신에게 비밀로 하려 애를 쓰신다 해도 할아버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병세를 눈치 채시고 계셨을 것입니다. 겉으로만 모르는 척 하셨지요. 그래야 당신, 가족, 의료진 모두가 편하리라 생각해서이지요. 뵈러 갈 때는 우선 단정한 복장으로 가십시오. 방에 들어가시면 미소를 짓고 곧바로 누워 계신 할아버님께 다가가 옆에 앉아 할아버님 몸에 손을 대십시오. 팔을 잡는다든가, 가슴이나 다리에 손을 얹는다든가, 피부접촉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똑바로 할아버지 눈을 보십시오. 학생의 눈은 슬퍼도 좋고, 눈물이 고여 있어도 좋고, 반가워 웃는 눈이어도 좋습니다. 감정을 감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할아버님이 "이 녀석아, 나는 이제 간단다"라고 하시면 그저 잠자코 있거나 "할아버지 뒤를 이어 열심히 살겠어요"라고 말씀드리세요. "무슨 말씀이세요! 곧 회복하실 터인데요"라는 식의 거짓말은 오히려 할아버님을 실망시켜 드리지요. 나올 때에는 할아버님 볼을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쓸어드리면 더욱 좋아하실 것입니다. 학생도 백년 뒤에는 이 세상에 없을 터인즉 혼자 죄송해 하지말고, 먼저 떠나가시는 분을 당당하고 예의바르게 배웅한다는 심정으로 찾아뵈세요.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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