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선진국의 신문들은 고급지와 대중지로 확연하게 구분돼 있다. 그러한 구분이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깊이 생각해 보았더니 의외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급지는 무한팽창을 추구하지 않는다. 수십만 부의 부수로 만족한다. 우리보다 인구가 1,000만 명 이상 더 많은 프랑스의 르몽드만 하더라도 발행부수는 겨우 40만부를 넘나든다. 그래서 고급지는 살벌한 '독자 확보 전쟁'을 하지 않으며 한국의 경우처럼 신문 배급을 둘러싸고 살인 사건이나 폭력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고급지는 엘리트 위주의 신문이기 때문에 자기의 색깔을 분명히 하되 치졸한 수준의 왜곡 및 과장 보도를 하지 않으며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선정주의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반면 대중지는 무한팽창을 추구한다. 오직 돈 버는 게 목적일 뿐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다. 돈 버는 데 도움이 된다면 '진보'도 팔고 '보수'도 판다. 선정주의가 난무하긴 하지만, 절대 다수 대중의 성향과 취향을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고 반영하는 데에 열려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급지와 대중지가 분리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신문이 민심을 통제나 조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어려우며 신문과 민심 사이의 괴리가 비교적 작다. 반면 고급지와 대중지가 분리돼 있지 않은 채 신문이 그 두가지 기능을 동시에 충족하려는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신문과 민심이 따로 놀며 '힘의 논리'가 작동한다. 일반 서민들도 자신의 이념·정치적 색깔과 무관하게 '주류'를 알아야 한다는 '안전의 욕구'와 실용과 쾌락을 우선시하는 '흥미의 욕구'에 따라 발행부수가 많은 유력지를 선호한다.
바로 여기서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 발행부수가 많은 이른바 '빅 3' 신문은 민심과 한참 동떨어져 있는 신문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한국 사회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문들은 보수 일색이어서 정작 민심은 개혁지향적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 목소리가 한국 사회의 언로(言路)를 지배케 하는 가공할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인터넷이 그런 기형적인 언로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는 건 불행 중 다행이긴 하나, 세대간 인터넷 격차로 인해 '빅 3' 신문의 보수성이 이 나라를 분열과 갈등의 수렁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내부 싸움 하다가 국력을 탕진하고 말 것이다.
이제 시민들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화려한 경품과 무료 구독, 또 맹목적인'주류'에의 추종과 '실용과 쾌락' 욕구 등과 같은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이념· 정치적 색깔에 맞는 신문을 구독하는 게 이 나라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라는 각성이 있어야겠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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