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사이버 공간을 휩쓴 흑사병 같습니다."인터넷 대란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26일,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비상근무를 위해 출근한 모 인터넷쇼핑몰 직원은 컴퓨터 바이러스의 무서운 위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하루종일 빗발치는 이용자들의 문의전화에 시달리며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다 보니 인터넷이 이번처럼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저 "어떻게 이런 재앙이 생겼을까"라는 궁금증만 내내 머리 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 답은 한 보안업체 사장이 던진 "초고속인터넷의 업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역설적으로 세계 최고라는 우리의 초고속인터넷 때문에 바이러스도 그만큼 빨리 퍼졌다"며 "그동안 인프라 확산에만 신경을 쓰고 보안 투자는 외면한 데 따른 예고된 재앙"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이번 사고도 지난해 7월 마이크로소프트(MS)가 SQL서버의 보안취약점을 사전 경고했을 당시 보안관계자들이 취약점 보완작업을 서둘렀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인재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특히 산하에 정보보호센터까지 운영하면서 사전 경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뒤늦게 대국민행동요령만 발표한 정보통신부의 대응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아울러 이번 사고로 인터넷업체들의 부족한 서비스 정신도 여실히 드러났다. 대형 인터넷서비스 업체 가운데 사고 복구후 이용자들에게 그동안 불통사유와 향후 대책을 안내한 곳은 옥션 뿐이었다. 다음, 야후, 네이버, 네이트닷컴, 프리챌 등 이름 꽤나 알려진 인터넷 사이트들의 대부분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해 답답했을 이용자들에게 사과는 고사하고 이렇다 할 사고 내용 안내문 조차 없었다.
이러한 후진적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의 자부심은 허상에 불과하다.
최연진 경제부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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