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누운 저수지/안도현
둑에서 삼겹살을 굽던 시절은 갔네
물위로 일없이 돌을 던지던 밤도 갔네
저수지 그 한쪽 끝을 잡으려고 헤엄치던 날들도 갔네
청둥오리 떼처럼 몇 번 이사를 하고
청둥오리 떼처럼 또 저수지를 찾아왔네
저렇게 저수지가 꽝꽝 얼어 있는 것은
얼어서 얼음장을 몇 자나 둘러쓰고 있는 것은
자기 속을 보여주기 싫어서
등을 돌리고 있는 거라 생각하네
좀더 일찍 오고 싶었다고
등을 툭 치며 말을 걸고 싶지만
저수지가 크게 크게 울 것 같아서
나는 돌 하나 던지지 못하네
■시인의 말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얼음이 녹기 전에 저수지든 강이든 좀더 유심히 들여다볼 생각이다. 나한테 등 돌린 것들에게 더듬더듬 말을 걸어보고 싶은 것이다.
● 약력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 국문과 졸업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등 시와시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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