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조 지음·효형출판 발행·1만8,000원국어사전에 따르면 풍경은 '어떤 상황이나 형편, 분위기 가운데 있는 어느 곳의 모습'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풀어 놓은 사전도 있다. '바람 풍(風)'에 '볕 경(景)'이니 고개를 들어 눈만 돌리면 보이는 지천의 모든 것이 다 풍경이다. 그래서 풍경은 단순하고, 오감으로 전해지는 대단히 즉물적인 것이라고 이해하기 쉽다. 같은 자리에서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느끼는 것이 나와 남이 별로 다르겠나.
그러나 '풍경에 다가서기'를 읽고 난 뒤 바라보는 풍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저자 강영조 동아대 도시계획·조경학부 교수는 풍경을 보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으며 이 방법을 따르면 뜻 없이 눈길을 줄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감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모두 좋아하고 그 아름다움에 동의하는 풍경이 있다는 데 주목, 옛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어떤 자세로 풍경에 임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박생연(朴生淵)' '쌍계입암(雙溪立岩)' '단발령망금강산(斷髮嶺望金剛山)' 등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산마루나 계곡에서 올려보고, 내려보고, 둘러보는 행위를 연출한다. 이런 행동을 통해 멀리 거리를 두어 바라보고, 사방의 조망이 가능한 곳에서 시선을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호쾌한 풍경 감상을 이룰 수 있다.
저자는 또 조선 중기 유학자 김인후(金麟厚)가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을 읊은 '소쇄원 48영'을 예로 들어 선인들은 시선의 미동과 회전(시각), 자연에 협음하는 인공의 소리를 선별하는 예민한 귀(청각), 전신으로 감지하는 경물들의 감촉(촉각), 시와 때에 따라 다르게 전해오는 풍경의 냄새(후각), 그리고 풍경과 교향(交響)하는 음식물을 가려내는(미각) 등 오감을 모두 동원해 풍경을 감상했다고 지적했다.
사람 없이 둥근 창 하나 낸 맞배 지붕의 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네 그루가 만들어 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집의 기능을 충실히 인식하고 볼 때 따뜻한 그림이 되며 소나무의 절개도 더욱 돋보인다. 덧붙여 저자는 "시각중추는 상방향으로 30도, 하방향으로 30도 등 전체 60도의 범위에서 풍경이 의미를 가진다"는 경관 공학 지식을 동원해 풍경과 전시 요령도 소개했다.
책의 진면목은 저자의 말대로 '풍경을 보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순하고도 찬란한 체험의 원천'을 소개하는 대목에 있다. 전작이 아니라 월간 '산'에 연재한 글을 고쳐 모은 탓에 책의 짜임새가 치밀하진 않지만 그 찬란한 체험을 걸맞게 설명하는 여러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석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의 색조와 절묘한 구도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여명을 걷어내고 대낮을 뜨겁게 태우다가 마침내 목숨이 다하여 저 너머로 사라지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자연의 섭리를 자신과 겹쳐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차가운 강철조차 붉게 녹을 피우고 있을 때에는 아름답다. 고산의 묵은 등걸이 아름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세월을 안고 스러져가는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폐허는 철저하게 풍경이다."('어세겸의 폐허 미학' 63쪽)
책에는 김인후의 시를 인용한 대목도 있다. '대숲 너머 부는 바람은 귀를 맑게 하고/시냇가의 밝은 달은 마음 비추네//깊은 숲은 상쾌한 기운을 전하고/엷은 그늘 흩날려라 치솟는 아지랑이 기운//술이 익어 살며시 취기가 돌고/시를 지어 흥얼 노래 자주 나오네.'
눈만 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게 풍경이 아님을 일깨운 점도 새롭지만 저자의 단어 구사나 문장 표현이 단정하고 깔끔해서 좋다. 책을 읽는 것이 꼭 소쇄원의 풍경을 보는 느낌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퇴계에게서 배우는 풍경 감상법 10
퇴계 이황은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한 뒤 이듬해 풍기군수로 전근했다. 그 해 4월 "젊어서 영주, 풍기 사이를 오가며 머리를 들면 바라볼 수 있었고 갈 수 있었으나 섭섭하게도 40년 동안 오직 꿈에 생각하고 마음으로만 달린" 소백산 탐승(探勝)에 나선다.
3박4일에 걸친 당시의 경치 감상이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이란 글로 남아 있다. 강영조 교수는 '풍경에 다가서기' 64∼75쪽에서 "모든 풍경을 오롯이 체험하기 위한 요령으로 삼을 만하다"며 퇴계의 예사롭지 않은 풍경 체험을 10가지로 정리했다.
1. 건강과 볼거리에 맞추어 탐승 경로를 정하라
2. 풍경을 흥미롭게 하는 다양한 이동 수단을 이용하라
3. 좋은 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조망점과 시기를 선정하라
4. 다양한 자세로 풍경을 감상하라. 몸을 구부려 물소리도 들어보고, 앉거나 기대고 드러누워서 색다르게 풍경을 즐겨라
5. 풍경에 맞춰 시선과 시각 크기를 조절하라. 계곡에서는 산 어귀로, 산마루에서는 사방으로 시선을 두어라
6. 인상적인 풍경에 이름을 붙여라. 풍경이 자신의 몸인 듯 느껴질 것이다
7. 풍경을 상찬(賞讚)하라. 시를 쓰거나 아니면 기행문을 쓰라
8. 맛있는 먹거리를 맛보라. 술이 있으면 좋고 물 한 모금, 들 열매 한 알도 좋다
9. 미리 공부하고 가라. 기록이 있는 것이 산놀이 하는데 얼마나 유익한가 알 수 있다
10. 풍경 체험을 나눌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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