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지면 자신은 반(半)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 말이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이 벌써부터 선거운동하느냐고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그 말은 화자(話者)의 법적·논리적 관계상 신분이 어울리지 않고, 취임 전에 내년 총선을 언급한 것도 성급해 보인다. 며칠 전 한나라당 방문으로 싹튼 상생의 여야관계가 깨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엄밀하게 말해 그는 지금 평당원이다. 선거에서 당은 이겨야 하고 당인이라면 누구나 당을 걱정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당적을 초월해 국정을 고민해야 할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다. 당원이 할 수 있는 말과 일거수 일투족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당선자가 해야 할 말은 엄연히 달라야 한다.
민주당이든 어느 당이든 변화의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개혁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독려도 충정을 담은 당원의 의견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기려면 한나라당은 져야만 한다는 사실에 이르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개혁을 내걸고 싸우는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기려면 한나라당은 반개혁적이거나 덜 개혁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당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당의 정치행위도 대통령만을 위해서 이루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대통령의 본분과 역할, 의무가 반으로 격하될 일은 아니다. 아쉬울 땐 협조를 구하다가 다른 자리에선 상대를 제압하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한나라당이 분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보기 드문 여야 협력무드가 막 싹트려는 마당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도량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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