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6년 1월25일 수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1813년 파리에서 몰(沒). 라그랑주의 몸에는 프랑스인의 피와 이탈리아인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 혼혈은 프랑스군 기병 대위였던 그의 할아버지가 사르디니아 왕 카를로 엠마누엘레 2세를 섬기며 토리노에 정착한 뒤 시작되었다. 라그랑주 몸 속의 두 핏줄 가운데 더 진한 것은 프랑스쪽이었다. 혼혈 1세인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계 여성과 결혼해 라그랑주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으로 태어난 라그랑주가 프랑스인으로 죽은 것은 그런 핏줄의 끌림 때문이었는지 모른다.라그랑주는 생애 후반기를 유럽에서 가장 힘세고 유명한 군주 두 사람에게 봉사했다. 한 사람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이고, 다른 사람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다. 라그랑주가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후임으로 베를린 과학아카데미 수학부장으로 취임한 것은 30세 때였다. 라그랑주에게 프리드리히 2세가 보여준 친밀감은 수학사에서 유명한 것이지만, 대왕이 라그랑주의 학문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수학을 어느 정도 알았던 나폴레옹 1세는 그를 진정으로 존중했다. 황제는 라그랑주를 "수학 세계에서 우뚝 솟은, 긍지에 찬 피라미드"라고 평가한 바 있다. 나폴레옹 덕택에 라그랑주는 파리 이공대학 초대 학장이 되었고, 프랑스 원로원 의원이 되었고, 백작이 되었고,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해석 역학과 정수론·타원함수론·불변식론(不變式論) 등에서 라그랑주가 이룬 업적에 대해 기자는 프리드리히 2세 만큼도 아는 바가 없다. 그러니 그의 이름을 딴 라그랑주점(點)만 짧게 언급하고 '오늘'을 마무리하자. 라그랑주점이란 두 천체가 케플러 운동을 하고 있을 때 그 주위에서 중력이 0이 돼 역학적으로 안정된 점을 가리킨다. 고 종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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