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종전에는 자료 제출시기를 단순히 연기해달라고 했지만 이번엔 28일까지 꼭 제출하겠다고 해서…."24일 감사위원회를 열어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 짓고 검찰 고발 여부를 확정 짓겠다던 감사원이 이날 아침 불쑥 감사를 재개한다며 내놓은 해명이다. 하지만 감사원이 지난 해 12월 현대상선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국가기관의 위신' 운운하며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던 것에 비해 보면 이날 감사원의 해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지난 해 10월 대북지원 의혹 감사를 시작한 이후 공식·비공식적으로 다섯 차례나 현대상선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가 번번이 무시당했던 감사원이 이제와서 "그 때는 단순한 연기 요청이었다"는 명분을 달아 현대상선을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것만이 아니다. 감사위원회 개최를 당초보다 하루 연기할 때도 별다른 설명이 없었던 감사원은 23일 밤 늦게 현대상선이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극히 이례적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수용했다. 검찰이 계좌추적 등 철저한 수사의지를 보이고 있는데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진 직후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감사원이 현대측의 시간끌기를 도와줬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현대상선 자료를 통해 4,000억원의 흐름을 모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감사원의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 동안 계좌추적권이 없어 대북지원설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고 감사 범위도 산업은행 대출의 적법성 여부에 국한된다던 기존의 입장을 뒤집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감사원은 16일 인수위 보고에서 독립성과 공정성을 이유로 완전 독립기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감사원의 이번 결정은 독립기관화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원칙과 일관성 부재의 고질병을 극복하는 게 시급한 과제임을 보여줬다.
양정대 정치부 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