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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휴먼 퓨처-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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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휴먼 퓨처-부자의 유전자 가난한 자의 유전자

입력
2003.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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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송정화 옮김 한국경제신문 발행·1만3,000원1989년 공산권 몰락을 지켜보며 "자유민주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그는 10여년 만에 이 주장을 거둬들여 또 한번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그가 지난해 발간한 '휴먼 퓨처'(원제 'Our Posthuman Future')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생명공학 기술을 지목했다.

책은 미래에 대한 소름끼치는 전망을 제시한 조지 오웰의 '1984년'과 앨서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이야기로 시작한다. 후쿠야마는 오웰이 그린 전체주의의 위협이 공산권 몰락으로 사라진 반면 헉슬리가 주목한 생명공학에 의한 인간성 상실 우려는 이미 현실화했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먼저 인간 행동의 생물학적 원인을 규명하는 뇌과학을 비롯해 신경약리학 수명연장 유전공학 등 생명공학 각 분야의 현단계 연구 성과와 이를 통한 미래의 변화상을 조목조목 짚은 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생명공학 기술이 상업화할 경우 부자들의 지식과 권력 독점이 반영구화해 부자 유전자(gene-rich)와 가난뱅이 유전자(gene-poor) 질서가 고착화하고 사회는 반(反)자유주의 체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돈 많은 부모들이 유전공학 회사에 거액을 내고 DNA 조작을 통해 모든 면에서 뛰어난 '맞춤 아기'를 만들어 내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아직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최근 종교집단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최초의 복제인간 '이브'를 탄생시켰다고 밝혀 충격을 던진 마당이어서 이를 기우로만 칠 수 없게 됐다.

후쿠야마는 더 늦기 전에 생명공학의 고삐를 죄기 위해 국가 권력이 나서서 새로운 규제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명공학의 허용 한계에 관한 논쟁과 관련, 인간복제 뿐 아니라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의 편에 선다.

이 책이 발간된 직후 "난치병 치료 같은 선량한 목적의 연구까지 금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거나 "생명공학의 미래를 정치 과정에 맡길 경우 오히려 더 큰 재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등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또 저자는 인류가 반드시 지켜내야 할 '인간본성'의 철학적 규명을 시도했지만 생명공학에 대한 강력한 규제의 근거로 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생명공학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다루며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논쟁이 이뤄져야 할 핵심 쟁점을 제시하고 있어 꼭 한번 읽어볼 만하다. 다만 시간을 다퉈 번역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 정확한 의미 전달이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은 점이 아쉽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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