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현대상선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사건과 관련,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을 전격 출국금지 조치하면서 본격적인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북한 방문을 마치고 22일 귀국한 정 회장을 하루만에 서둘러 출국금지 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속전속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검찰은 대우그룹 사건의 '김우중 케이스'를 염두에 둔 듯하다. 정 회장이 다시 출국할 경우 수사가 난관에 빠지게 되고, 이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검찰로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 감사결과가 발표되는대로 검찰의 수사는 강도높게, 그리고 신속하게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빠른 행보는 지난 18일 TV토론에서 노무현(盧武鉉) 당선자가 이 사건에 대한 '소신있는 수사'를 주문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노 당선자 측으로서는 현 정권에서 발생한 대북 지원 의혹을 신속하게 규명, 정치적 부담을 조기에 털어 내려는 의도가 엿보이고 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신정부 출범에 맞춰 실추된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시험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감사원 감사가 시작된 이후 3개월여동안 물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내사를 진행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 사건은 대검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가 아니라 1차 수사팀인 서울지검 형사9부에 맡기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검찰이 4,000억원 중 출처가 불분명한 2,240억원의 행방에 대해 4∼5가지 시나리오를 작성, 본격 수사에 대비한 도상연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도 검찰 주변에서는 흘러나오고 있다. 검찰은 설연휴가 끝나는 다음달 초부터 수사를 본격화 한다는 스케쥴을 짜놓고 있으며, 소환대상에는 정 회장은 물론 현대아산의 핵심인사,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망라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노 당선자의 취임식 전에 수사가 매듭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사건 관련자들이 많은데다, 검찰이 가장 기대를 걸고있는 계좌추적 역시 현대측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라진 2,240억원중 일부가 정치자금 등 엉뚱한 용도로 사용된 사실이 포착될 경우 '정치권 사정'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검찰은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의혹의 상자를 하나씩 열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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