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얼마나 강력한 대통령이 될까. 혹은 얼마나 부진한 대통령이 될까. 아마도 그가 통치할 5년의 그림을 금세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까지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리더십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선거기간에 버금가는 분열과 소수세력의 아픈 좌절로 갖가지 혼란에 휩싸일지도 모른다.그러나 한가지, 각종 제도와 정책 분야에서 그가 개혁을 강력히 시도하리라는 예상만큼은 분명하다. 진보 대 보수의 싸움에서 파격적인 승리를 거머쥔 당선자인 이상, 선거결과의 명령이 이미 개혁으로 제시돼 있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 5년의 청사진을 한창 만들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를 개혁·진보적 인사들이 채우고 있는 데서 정책방향의 향배를 가늠하기도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는 젊은 대통령이다.
개혁은 성패여부를 떠나 강력한 시도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오게 돼 있다. 혁명보다도 어려운 게 개혁이라고 하는 말은 그 변화의 시동과 과정이 지난(至難)함을 뜻한다. 사실 '변화와 개혁'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라는 자기도취 속에 내건 슬로건이 그것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이 최초의 정권교체 세력이라는 평가를 업고 시도한 정책들도 그런 기분에서 였다. 하물며 스스로 '천운'으로 당선됐다고 한 노 당선자의 경우라면 의욕과 사기가 넘쳐 날 것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만큼은 전임자들과 크게 다른 처지에서 개혁작업에 나서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만 해도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협조를 이끌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면, 노 당선자는 당내에서 이미 비우호적인 세력의 영향에 시달려야 할 판이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를 되돌릴 수는 없고, 반대파의 적대적 앙금이 언제 어떤 식으로 튈지도 알 수 없다. 다음 총선의 공천설계나, 선거이후 당내기반 확대를 어떻게 할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물론 당선 직후인 지금이야 걱정거리가 못 된다. 또 여론지지도가 괜찮을 집권 초반에도 심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갖지 않고는 집권 5년의 구상은 순탄할 수가 없다.
노 당선자가 야당과의 관계에 직접 나서는 이유가 그래서라고 할 수 있다. '국민참여'라는 구조를 통치영역 내에 확립해 두려는 것도 같은 사정일 것이다. 정치분야, 특히 야당과의 관계에서 김대중 정부의 실패사례만 살펴도 딴 해법이 나올 수가 없다. 더구나 노 당선자의 이해관계가 당내 이해관계와 일치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는 자기 당을 상대로 한 설명과 설득에 더 정교한 공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노 당선자는 강력하고 거침없는 대통령이 되기에 힘이 부족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현 정부보다 더 세가 불리한 소수파인 셈이다.
그러나 개혁파로서 그는 부족한 힘을 보전하지 않고는 원활한 직무를 펴기 어렵다. 인수위 안팎의 노 당선자 언행에서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전략적 자각이 느껴진다. 그는 요즘 되도록 몸을 낮추고 있다. 또 각 분야 현안에 대한 정견은 부쩍 유연해 졌다.
그의 힘은 무엇으로 보전될 수 있을까. 얼마 전 만난 노 당선자의 한 측근은 "노 당선자는 상식과 원칙, 여론을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힘의 보전은 여기서부터 찾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억지나 변칙이나 편협한 당파성을 벗어나 열려있다면 강화되는 것은 바로 설득력이다. 당당한 설득력을 갖출 수 있을 때 구조적 힘의 불리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노 당선자가 말한 '토론 공화국'도 바로 설득력을 높이는 과정이 돼야 한다. 토론 마당은 야당과의 토론, 세대간의 토론, 보수와의 토론으로도 채워져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정당한 명분과 도덕성을 우선시하고 초당파적 발상을 해야만 그 설득력도 배가될 수 있을 것이다.
조 재 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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