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는 최근 동아시아 연구에서 세계 최고 대학이 되기 위해 서울대나 베이징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아시아 국가나 대학에 대한 우월·선민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화기에 일본이 주장했고 윤치호, 이광수가 현혹됐던 '아시아주의' 발상의 연장입니다. 천황과 일본을 정점·중앙으로 하는 수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역사 인식이 아직 일본에는 팽배하다는 점을 한국의 지식인들은 냉철하게 이해해야 합니다."윤건차(尹健次·59) 일본 가나가와(神奈川)대 교수는 해외에서 한국 지식인 사회를 연구하는 보기 드문 동포 학자이다. 2000년에 국내 지식인을 실명으로 들어 좌우 이념 성향에 따라 분류한 '현대 한국의 사상 흐름'이라는 책을 내 화제를 부른 그는 22일 자신의 새 책 '한일 근대사상의 교착'(문화과학사 발행)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다.
최근 2, 3년 사이 한국과 일본에서 발표한 글을 모은 이 책에서 그는 가장 큰 관심인 탈근대 문제가 한국과 일본 지식인 사회에서 어떻게 다르게 이해되고 있는지, 최근 십수년 사이 본격화한 두 나라 지식인의 교류가 어떤 모양인지를 주로 다루었다. 지난해 3월까지 1년 동안 재외 연구자 과정으로 서울대에 머무는 동안 쓴 글에 비슷한 때 일본에서 발표한 글을 합쳤다.
"일본에서는 대중은 물론이고 지식인 사회까지도 이른바 '천황 중심의 인식'이 확고하다"는 그는 "경제 불황에다 사회의 우경화로 당장 이런 구도에 변화가 올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나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은 이런 역사 인식의 방증이다. 때문에 윤 교수는 책에서 한국 지성에게 일본을 배운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부하는 것일 수 있지만 일본 지식인이 식민주의를 비판하고 과거 청산에 둔감한 한 그 사상을 수용하는 일은 한국의 자기 이해와 탈식민주의 과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가 제안하는 탈근대, 즉 식민주의 극복은 '동아시아 연대'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아시아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협력이 아니라 공동 관심사를 가지고 "투쟁하면서 얻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서울과 오키나와(沖繩)의 반미 시위, 일본 내의 한국인 문제 등을 두고 손 잡고 싸울 때야 비로소 민족과 계급, 민중의 개념이 명확해지고 연대의 방향도 뚜렷해진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한국이나 일본 어디에서도 '경계인'일 수밖에 없다는 그는 하지만 그 때문에 한국이 극복해야 할 문제, 일본의 과제를 동시에 눈 여겨 볼 수 있다며 "한국의 새 정부가 국민과 끊임 없는 긴장을 유지하며 남북 문제를 원만히 풀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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