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기에는 행정개혁이 늘 집권층의 화두가 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공무원은 개혁대상으로 낙인되고, 정치권은 개혁을 약속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고 만다. 이것은 정치권이 겉으로는 행정개혁을 내세우면서 전혀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행정개혁을 통해 공공부문의 상위직을 물갈이하려고 한다. 상위직을 자기 세력으로 충원하고 나면 중· 하위직 공무원을 포섭대상으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반복적 과정이 공무원집단을 개혁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개혁과정에서 파편이 자신에게 튀지 않기를 바라는 '복지안동(伏地眼動)' 행태를 보이기 마련이다.김대중 정부는 전자정부와 정보공개의 확대로 반부패 및 개혁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비교적 성공했다. 그러나 아들들과 주변 인물들이 부패함으로써 이러한 노력은 상당히 빛이 바랬다. 공무원들이 정치개혁 없는 행정개혁을 '팥소없는 찐빵'으로 여기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을 속죄양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정치권에 무언의 저항을 하게 된다.
행정개혁이 정치개혁과 함께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각 부처의 장관은 인사상 대통령의 직접 영향권에 놓여있다. 이들이 대통령을 향한 '해바라기'습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 행정개혁은 어렵다. 이제 각 부처 장관들은 국민을 향한 '해바라기'가 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지방분권화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각 부처 장관에게 의사결정권을 주고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다. 권한과 책임을 연계하는 것이 성과관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개혁의 궁극적 방향은 공공부문의 투명성 확보 및 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이것은 공공부문 나아가 국가부문의 정책 및 문제 해결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첫째 개방형 임용직위를 확대하도록 한다. 개방형 임용제는 신분안정에 대한 믿음으로 안이해지기 쉬운 공무원 사회를 자극하고, 민간부문과의 경쟁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중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부 국· 실을 제외하고 국장급이상 직위 대부분은 원칙적으로 개방형으로 돌려야 한다. 개방형 직위의 지정과 함께 임기 보장 및 보수인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임기중의 성과를 다면적으로 평가해 재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성과평가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둘째 핵심직위 공모제를 실시해야 한다. 각 부처별로 핵심직위를 선정, 우수 공무원을 공모 선발한 후 능력발전을 위한 인사관리를 해야 한다. 이를 개방형 임용제와 연계함으로써 공공부문의 인적자원관리 시스템화해야 할 것이다.
셋째 복수직급제 실시이후 복잡해진 행정부내 계층구조를 단순화해야 한다. 또한 보직순환 경로를 전문화하기 위한 계층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넷째 고시제도를 통한 공무원채용 비율을 줄이고, 공무원 채용구조를 다양화해야 한다. 특히 우수한 박사인력을 개방형으로 임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직 공무원을 우대해야 한다. 일반행정공무원 중심으로 임용되고 있는 중 ·상위 직급에 기술직을 일정 비율 임용하도록 의무화하는 기술직 할당제를 실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원칙의 정립과 실천을 위해서는 행정개혁위원회가 상설기구화해야 한다. 또한 이 위원회에 민간부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행정서비스의 주요 고객집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기업부문을 행정개혁과정에 과반수이상 참여시켜야 한다. 이러한 행정개혁을 모니터링하는 사회적 감시시스템도 반드시 필요하다.
권 해 수 한성대 정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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