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2002년 6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을 보고 김지하(62)씨는 감격했다. 한 지인이 "저 열기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년 뒤 그는 그 자리에서 촛불을 든 부드러운 힘을 보았다. 6월의 젊은 그들이 곧 12월의 젊은 그들이라는 것을 그는 미리 알아차렸던 것이다.김씨가 새해 첫날 하루 만에 쓴 미발표 원고 '촛불' 등을 묶은 칼럼집 '김지하의 화두'(화남 발행)를 냈다. 동북아 물류중심론, 신문명의 원형으로서의 동아시아의 가능성 등 다양한 논점 가운데 가장 공들인 화두는 '붉은악마와 촛불'이다. 수년 전부터 대립하는 것들의 화해를 탐색해 온 그에게 붉은 악마와 촛불 시위, 그 주체인 젊은이들은 모순된 것들의 조화로운 공존으로 비쳤다.
"붉은 악마 세대, 촛불 세대는 국수주의자가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민족과 동양을 알고 사랑한다. 세계화주의자들이 아니지만 생득적으로 전지구적인 개방 사회를 지지한다. 이중적이되 내적인 논리가 부딪치지 않는다. 이전 세대가 존재와 당위, 이론과 실천 사이에서 갈등할 때 젊은 세대는 이중성 자체를 삶의 실존적 논리로 익숙하게 받아 들인다."
이처럼 모순된 것을 하나로 안을 수 있는 젊은 세대는 그 자체로 21세기의 가능성이다. 21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김씨는 "젊은 주체들에게 민족적 대비약의 기회가 주어졌다. 다만 그들 자신이 그것을 확실히 깨닫는가의 문제는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은 반미(反美)지만 반미가 아닌 시위"라고 알 듯 말 듯하게 말했다. "촛불은 분명 반미다. '아메리칸 로마'를 거스르는 것은 모두 다 반미요, 반미 정치다. 그러나 촛불은 정치이지만 정치가 아닌 제사다. 이 세상에 그것 이상의 성스러움이 없다는 점에서 제사다."
그는 촛불 시위를 통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개정하고 민족 자존심을 살리되, 미군 철수와 같은 극단적 반미주의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군 철수가 실행에 옮겨지면 동북아 세력 균형의 추가 끊어진다. 일본의 군비가 증강과 정계 극우화, 중국의 신무기 개발과 군대 확대를 불러 한국은 위험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촛불 세대에게 이제 SOFA 문제 해결은 새 정부에 맡기자고 당부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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