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최경주(33)라는 프로골퍼가 골프 애호가들에게는 단연 화제다. 골프를 대표적인 사치스포츠로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는 밉지않은 존재가 됐다. 물론 빼어난 활약상이 그 까닭이다. 20일 끝난 PGA(미 프로골프)대회(소니오픈)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앵글로색슨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잇따른 선전은 여러모로 힘겨운 국내 상황에서 작은 활력소가 되기에도 충분해 보인다.출전기회를 갖기조차 하늘의 별따기라는 PGA에서 2승을 올리고 있는 그에게는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그물 쳐진 골프연습장을 꿩사육장으로 알았던 시골 어촌(전남 완도) 소년이 고교 1년 때 체육교사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고 서울로 올라와 연습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아픈 과거사는 그에겐 오히려 자랑이 됐다. 프로입문(93년) 전부터 하루에 볼을 3,000개나 때리곤 했던 악바리 근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말이 3,000개이지, 일반 골퍼들은 300개를 때려내기도 벅차다. PGA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99년) 후 스윙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드넓은 그땅에서 단거리 여행 한번 가지 않았다는 뒷얘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그의 단면이 담겨 있다. 이런 사연들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세계최고 실력과 체력, 정신력을 요구하는 PGA 무대에서 그 정도 스토리를 간직한 골퍼는 적지 않을 수도 있다.
정작 그에게 관심을 갖고 앞날을 더욱 밝게 보는 건 다른 이유에서다. 지난해 말 최경주는 PGA챔피언이라는 월계관을 쓰고 금의환향했다. 그리곤 예전처럼 며칠 후 그가 무명시절 먹고 자야만 했던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골프연습장을 찾았다. 후배들에 대한 독려와 격려금 전달을 잊지 않았고, 그를 키워준 연습장 곳곳을 살펴보았다. "이곳에 오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좋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필드에 나서는 최경주의 모자에는 '슈페리어(SUPERIOR)'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다름아닌 후원업체 이름이다. 이 상표를 95년부터 달고 다니고 있다. 슈페리어는 연 매출액이 700억원 정도인 중소기업이다. PGA 우승은 박세리가 선전하고 있는 LPGA(미 여자프로골프) 우승보다 7∼8배는 어렵다고 한다. 때문에 훨씬 규모가 큰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후원금을 받을 수 있고 그런 유혹도 많지만 아직도 한사코 이 업체를 고집하고 있다. 그는 "돈 때문에 어렵고 이름없던 시절 도와준 사람들을 저버릴 수는 없다. 욕 먹기도 싫다."고 했다.
최경주를 추켜세운 건 그의 초심 지키기가 근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또 다른 분야에서도 우직한 초심 지키기를 보고 싶어서이다. 굳이 새정권 출범, 기업들의 새판짜기와 같은 요즘의 세상사를 이 테마에 대입시키고 싶지는 않다. 단지 좌초했거나 실패한 정권, 기업, 조직, 사람들치고 처음 생각을 지켜낸 예를 찾기 어려운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변함없는 최경주의 굿샷과 월계관을 더 자주 보고 싶다.
김 동 영 체육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