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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37)지옥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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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37)지옥 혹은 죽은 자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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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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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식은 항상 균형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밝고 희망에 찬 낙원을 상상하는 한편으로는 반대로 어둡고 음울한 지옥 같은 세계도 그려볼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아도 엘리시온의 들판처럼 사철 온화한 낙원이 있는가 하면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하세계와 무간지옥이나 다름없는 타르타로스도 있다. 세계의 모든 신화에는 낙원과 지옥이 공존한다. 아울러 지옥의 이미지는 공통점이 있다. 그곳은 대개 어둡고 추우며, 땅밑에 있거나 북쪽에 위치한다. 무엇보다도 그곳은 죽은 자의 망령이 가는 곳이어서 이 세상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이다.중국 신화에서 지하세계와 원초적으로 관련이 깊은 신은 수신 공공(共工)이다. 그는 결코 선량한 신이 아니라 흉신(凶神)이다. 그는 대신 전욱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부주산(不周山)을 들이받아 천지를 혼란에 빠뜨린 이단자였으며, 그 후에도 자주 홍수를 일으켜 백성을 괴롭힌 악신(惡神)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신하인 상류(相柳)도 아홉 개의 사람 머리를 지닌 큰 뱀으로 다니는 곳마다 폐허로 만드는 난폭한 괴물이었다. 바로 이 흉신 공공의 아들인 후토(后土)가 지하세계의 지배자였다. 지하세계 지배자의 이미지가 상당히 부정적인 느낌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후토는 본래 땅의 신, 토지의 신이기도 하다. 중국신화에서는 후토가 다스리는 지하세계를 유도(幽都)라고 부른다. 땅밑의 어두운 세계라는 뜻이다. 이 유도가 지상으로 연결된 곳이 유도산(幽都山)인데 이곳에서는 흑수(黑水)라는 검은 강물이 흘러나오고 검은 새, 검은 뱀, 검은 표범, 검은 호랑이, 검은 여우 등 온통 몸 빛이 검은 동물만이 살았다.

그렇다면 지하세계인 유도의 정경은 어떠한가? 땅의 신 후토는 특별히 유도를 신하인 토백(土佰)에게 관리하게 했다. 토백의 모습은 무섭기 그지 없었다. 그는 호랑이의 머리와 소의 몸체에 날카로운 뿔이 있으며 두 손을 피로 물들인 채 죽은 자들을 쫓아다녔다. 그는 죽은 자들을 잡아 달게 먹었다. 죽은 자들은 이 땅밑의 세계에 와서 토백에게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비명을 지르며 이리 저리 쫓겨 다녔다. 유도는 무섭고 끔찍한 세계가 아닐 수 없다.

후세로 가면서 유도는 모든 땅밑이 아니라 특정한 산의 지하에 있다고 여겨졌다. 고대 중국의 북방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산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다. 이에 따라 산의 땅속 아래에 죽은 자들의 세계, 곧 유도가 있다고 생각됐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곤륜산(崑崙山)의 북쪽에서 지하로 3,600리 쯤 되는 곳에 8개의 유도가 있는데 주위가 사방 20만리나 된다 하였다. 산밑 땅속의 유도로서 가장 유명한 것은 태산(泰山)의 지하세계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방의 태산, 남방의 형산(衡山), 서방의 화산(華山), 북방의 항산(恒山), 중앙의 숭산(嵩山)을 오악(五岳)으로 숭배하였는데 이중 태산이 가장 중시됐기 때문이다. 이곳은 토백이 아니라 태산의 산신인 태산부군(泰山府君)이 다스렸다. 죽은 사람은 태산부군이 보낸 저승사자에 의해 태산의 지하세계로 끌려와 심판을 받았다.

죽은 자들이 가는 땅밑의 세계로는 유도 이외에 황천(黃泉)이 있다. 황천은 지하 깊숙이 흐르는 물로서 역시 죽어서 가게 되는 땅밑의 세계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지옥에 스튁스강이 흐르듯 중국의 지하세계에는 황천이 있다. 춘추(春秋) 시대 정(鄭) 나라의 임금 장공(莊公)은 모후(母后)와 사이가 나빴다. 일설에는 어머니가 장공을 낳을 때 심한 난산으로 거의 죽을 뻔해서 그를 미워했다고 한다. 후일 모후는 작은 아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외딴 성에 유폐되는 신세가 된다. 큰 아들 장공은 이때 분노한 나머지 "앞으로 어머니를 황천에서나 만나볼까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나 미워도 어머니에 대한 정은 어쩔 수 없는 법, 얼마 후 장공은 맹세를 후회하였지만 임금으로서 가볍게 맹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때 한 영리한 신하가 임금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려 꾀를 냈다. 그는 땅속 깊숙이 물이 흐르는 곳까지 굴을 파고 장공과 모후를 그곳에서 만나게 하였다. 편법이었지만 어쨌든 맹세를 깨지 않고 모자의 화해를 이루었던 것이다.

지하세계와 관련, 고대 중국인의 사후 세계관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 전시된,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된 비단에 그려진 그림은 이에 관한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전한(前漢) 시기 양자강 유역 제후 부인의 관 위에 덮여진 이 비단 그림은 죽은 자의 사후세계로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림에 의하면 고대인들은 이 세계를 크게 지하와 지상 그리고 천상의 3층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지상과 지하의 세계는 거인이 지상을 떠받치고 있는 것에 의해 분할된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이기도 한 이 거인은 아마 태양과 경주를 하다가 죽은 과보일 가능성이 크다. 과보는 본래 지하세계의 지배자인 후토의 손자이며 태양과 적대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은 일단 이 지하세계로 가야만 한다. 그림의 중간 부분은 지상세계이다. 이 부분에서는 제후 부인이 현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맨 윗 부분은 천상세계이다. 그림은 죽은 부인이 지하세계에 잠시 머물렀다가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천상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고 있다. 천상세계의 입구는 날개 달린 신선들이 지키고 있다. 이들의 안내를 받아 천상으로 올라가 보면 세발 달린 까마귀의 화신인 태양과 불사의 두꺼비가 살고 있는 달이 떠있고 신령스러운 용이 날아다니는 영원한 삶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마왕퇴의 비단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고대인들이 죽어서 일단 지하세계로 가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곳을 거쳐 신들과 더불어 영원한 사후의 삶을 누리는 천상세계로 가기를 희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은 후세에 정신과 육체의 수련을 통해 완전한 개체로 거듭나서 직접 천상세계로 진입한다는 신선, 도교사상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죽어서 가는 세계 즉 지하세계에 이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들의 거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중국의 서방에는 북방의 명산인 항산과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산이 있다. 이곳은 4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네 귀퉁이마다 유궁귀(有窮鬼)라는 귀신들이 떼를 지어 살았다고 한다. 이 귀신들은 그 이름으로 보아 사람을 가난에 빠트리는, 좋지 않은 짓을 저질렀던 것 같다.

귀신들의 대표적 거처로서 유명한 곳은 동쪽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는 도삭산(度朔山)이다. 도도산(桃都山)이라고도 부르는 이 산에는 가지가 삼천리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복숭아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동북쪽으로 뻗은 가지에 세상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이 문을 귀문(鬼門)이라고 불렀다. 귀신들은 세상에 나가 놀다가 복숭아 나무 끝에 있는 황금빛 닭이 아침에 울기 전에 이 귀문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귀신들이 새벽 닭이 울면 황급히 떠나가는 것은 이런 나름대로의 룰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 귀신들은 신도(神 □)와 울루(鬱壘)라는 두 형제의 신이 다스렸다. 그들은 귀문에 지켜서서 귀신들의 귀가시간을 통제하였고 인간에게 해를 끼친 귀신을 갈대 끈으로 묶어 호랑이 밥이 되게 하기도 하였다.

지하세계를 통해 고대 중국의 사후세계관을 살피면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 중국에는 사람이 죽으면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다음 세상에 다시 사람이나 동물로 태어난다는 식의 윤회사상 같은 게 없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삶은 일회적이었다. 죽으면 망령이 유도나 태산으로 가면 그것으로 끝이었던 것이다. 물론 인과응보 관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주역(周易)'에는 일찍이 "착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나중에 경사가 나고, 나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나중에 재앙이 닥친다"라는 언급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업보가 집안이나 후손에게 미친다는 말이지 자신의 내세를 결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도는 물론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등은 많건 적건 모두 윤회사상에 젖어 있었다. 여기에 비해 고대 중국의 일회적이고 현세적인 생사관은 독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우리는 후토, 과보 등 지하세계의 담당자들이 모두 중국신화에서의 이단자인 공공의 후예라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과보는 태양의 권위에 도전한 바 있고, 반항아인 치우(蚩尤)를 도와 신들의 왕인 황제(黃帝)와 투쟁했던 화려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밝고 명랑한 지상세계의 지배자가 되지 못하고 어둡고 음울한 지하세계의 주인이 된 이들은 어쩌면 중심의 논리에 밀려난 주변부 민족의 신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과보가 고구려 벽화에서 무덤의 수호신으로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글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 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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