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프랑스가 1, 2차 세계대전 이후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체결한 '화해·협력조약(일명 엘리제조약)' 이 22일로 40주년을 맞는다.1963년 1월22일 당시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과 콘라드 아데나워 독일 총리가 파리 엘리제궁에서 서명한 이 조약을 계기로 양국은 적대적 경쟁관계에서 포괄적 관계 발전을 향한 초석을 마련했다. 54년 체결된 파리강화조약이 2차대전의 후유증을 수습했다면 엘리제조약은 독일―프랑스 양국을 진정한 우방관계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 조약은 외교 과학 교육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양국 간 포괄적 협력관계를 규정했을 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유럽 단일화폐인 유로를 탄생시키는 산파역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양국은 22, 23일 파리에서 관계강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선언과 EU 개혁 공동방안을 발표하는 등 기념식도 성대히 열 예정이다.
엘리제조약이 올해 새삼 조명 받는 이유는 EU 확대에 따른 법적 틀을 마련하는 데 양국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당초 스위스를 확대한 것과 같은 강력한 연방제를 주창한 독일과 개별 회원국의 주권을 보다 중시하는 프랑스의 입장이 충돌, 유럽대륙의 두 맹주 사이에 이상기류가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양국 공동의 '이중 의장제' 가 EU 지도체제로 부상하면서 두 나라의 밀착행보는 국제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EU의 미래 청사진을 주도하게 될 양국의 공동보조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은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불편한 역사를 갖고 있는 두 대국 간 공동보조가 강력한 EU를 만드는 데 득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EU 확대 과정에서 주도권 다툼으로 변질될 때에는 과거의 앙금이 재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중의장제로 상징되는 양국 간 합의정신에도 불구, 기저에는 여러 불협화음이 잠복해 있다고 보고 있다. 양국의 가장 첨예한 다툼은 유럽의 정치·경제적 미래상에 대한 시각 차다.
정치결사체로서 EU를 보는 독일의 시각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매개로 한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유럽을 지향하는 프랑스는 유럽 내 NATO와 별개의 '신속 대응군' 의 창설을 주장하는 등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대등한 유럽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최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을 의식, 미국의 대 이라크 전에 반대입장을 보여 독일―미국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으나 미국을 보는 궁극적 시각은 프랑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로 경제통합의 전제조건인 각국 정부 재정적자폭에서도 양국은 심각한 이견을 보이고 있다. 당초 합의대로 엄격한 재정수지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독일에 비해 프랑스는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이유로 보다 유연한 재정정책을 선호하고 있다.
여기에 영국 이탈리아 등이 프랑스의 '유럽관' 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양국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속단하기 힘들다. 더욱이 정치·외교력에서는 프랑스, 경제력에서는 독일이라는 전통적인 힘의 균형이 최근 독일의 급속한 경기침체, 프랑스의 상대적인 경제호조 등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는 것도 양국의 미래를 손 쉽게 점칠 수 없게 한다.
이번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양국 하원이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합동회의를 여는 등 여러 이벤트가 펼쳐지지만 두 나라 관계의 기조는 여전히 긴장국면에서 봐야 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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