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 한편으로 충무로에서 가장 기대되는 감독이 된 봉준호. 그를 처음 만난 건 1990년에 당시 내가 근무하던 영화사 아르바이트생으로 왔을 때다. 이틀 동안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극장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는 일이었는데, 선배 소개로 왔던 5명의 남학생 중 하나였다.학교 신문에 카툰을 그리고 영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영화사 근무는 이틀로 끝났지만, 그 때의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게 해 가끔 연락을 하거나 때 되면 안부를 묻곤 했다. 대학(연세대)을 졸업한 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졸업작품으로 단편 '지리멸렬'을 내놓고 '천재 났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단편 '백색인' 또한 독특함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영화에서도 나타나지만 실제로 그는 특이한 대화법과 유머를 가지고 있으며, 직접 그리는 콘티는 평범 이상이어서 여러 사람에게 "이 친구는 분명 한가닥(?) 하겠구나" 싶은 생각을 갖게 하던 젊은이였다. 그 후 영화계에 입문해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는 소식, 연출부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시나리오로 '플란더스의 개'를 찍는다는 기사를 접했다. 역시나 평단에서는 그의 영화를 높이 평가했고, 사방에서 봉준호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캐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송강호 김상경이라는 최고의 배우들과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을 찍고 있다. 죄없는 여자들이 소리없이 죽어갔던 세기의 범죄(화성연쇄살인사건), 실제로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일 정도로 오리무중 상태의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인 '살인의 추억'은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미궁의 사건에 대한 궁금증도 되살아 나게 하는 흥미로운 소재다. '개구리 소년들의 죽음'이 최근 밝혀져 온 국민을 놀라게 했지만, 여전히 담뱃갑에 빛 바랜 사진으로 찍혀있는 '찾습니다'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는 게 현실이다.
학생시절의 단편영화나 첫번째 장편 데뷔작으로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그가 두 번째 영화로 택한 '살인의 추억'에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30대 중반의 한 젊은이가 바라보며 풀어내는 소신 있는 소재에 그를 믿고 연기할 최고의 두 배우가 펼칠 형사 연기는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만날 것 같은 설레임을 주기 때문이다.
의기소침해진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줄 감독으로, 내게는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으로 다시 한번 봉준호 감독이 뭔가를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영화칼럼니스트·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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