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민주당 의원들의 살생부가 떠 급속히 번지고 있다고 한다.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는 명단이라니 말 자체가 살벌하게 들리는데다, 그 분류 내용과 방식이 마치 혁명군의 군주적 표현과 발상을 담고 있어 해괴하기 짝이 없다. 의원들에 대해 적시된 내용으로 미루어 의원 개개인의 행적이나 당내 사정을 정확히 알고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니, 민주당이 지금 얼마나 흉흉하고 어색한 분위기일지 짐작이 간다.살생부 중에는 '역적'이라는 격한 표현이 등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역적 중의 역적'이라는 분류까지 동원되고 있다. 민주당 신주류의 관점이 대단히 분열적으로 대변되고 있다. 신주류측에서는 구주류측의 역공작이라고 반박한다지만, 앞으로 국정을 책임져야 할 집권당 내부 사정이 이래서야 불안과 우려의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노 당선자를 위해 뛴 사람들이 얼마나 외로운 처지로 역풍을 이겨내고 승리를 이루었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상대 당보다 더 야박한 비난과 공격, 공공연한 후보 보이콧 운동을 폈던 의원들에게서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섭섭함을 느꼈을 소수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파에 대한 적개심을 이런 식으로 노골화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공신과 역적을 누가, 무슨 기준으로 판별할 것이며, 그렇게 동지와 적을 구별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특히 걱정되는 것은 살생부의 유포가 인터넷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인터넷의 정치유입은 지난 선거의 가장 특징적 현상이자, 노 정권의 새로운 정치방식으로 꼽히지만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떤 식으로 관리·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두고두고 진지한 논쟁이 필요한 영역이다. 노 당선자에 대한 우려 섞인 관심 중 하나는 그가 대중동원식 정치방식을 선호하고, 이를 중요시하는 성향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인수위에서부터 정치에 인터넷을 본격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살생부 같은 글들이 노 당선자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것을 주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