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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보물 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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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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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에베르트 엮음 푸른숲 발행·1만5,000원문화재의 운명은 때로 기구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금붙이거나 별난 보석이어서 값이 나가는 보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뒤틀린 운명에는 언제나 인간의 탐욕이 함께 한다. 문화재를 시장 가치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치부(致富)욕, 공공의 유산을 개인의 것으로 삼으려는 독점욕, 거기에 무지까지 더하면 보물의 행로는 참으로 고단하게 된다.

'보물 추적자'는 문화재 발굴가와 보물 탐사자들에 얽힌 이야기를 4부 연작으로 소개한 독일 공영 방송 ZDF의 역사 다큐멘터리 '사라진 보물을 추적하는 사람들'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담은 책이다. 기원 전후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던 황금의 나라 박트리아의 고분 발굴이나 중앙아시아의 문화재 탐사 이야기는 이 지역의 화려했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어 일반인을 위한 고고학 이야기 역할도 충분히 감당한다.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생경한 문화재 감상의 기회를 주는 쪽이라기보다 보물을 좇는 사람들의 노력과 좌절을 독자들에게 충분히 맛보게 해 준다는 점이다.

책에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소설 '보물섬'의 흥미진진한 모험과 박진감에 견줄 만한 생생한 보물 추적 과정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보물이 다다른 종착역은 꼭 제대로 대접 받는 자리는 아니다. 또 4가지 발굴 이야기는 한결같이 약탈이나 저주 등 인간의 의식적, 무의식적 욕망이 진하게 배어 있다.

첫째 이야기는 1970년대 말 당시 구 소련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발굴한 세계 최대 규모의 황금 유물 이야기이다. 무려 2,000년 넘게 사람들의 탐욕을 피해 땅속에서 잠자고 있던, 동서양 문화를 아우른 6기의 황금 무덤 발굴은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보물이나 중국 진시황릉의 병마용 발굴에 못지 않는 20세기 대표적 발굴의 하나로 평가 받았다.

특히 그 발굴은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멸망 후 쿠샨 왕조가 성립할 때까지의 기간을 최초로 밝혀 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보물은 1986년 러시아에서 200점의 사진을 담은 도록이 발간돼 그 모습이 대강 알려졌을 뿐 발굴자들과 아프간의 권력자, 정치인 몇몇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누구도 출토된 보물을 실제로 본 사람이 없다. 발굴자들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 내전과 구 소련의 침공,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인 탈레반 집권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개인의 치부를 위해, 또는 전비 조달 목적으로 보물이 국외로 팔려 나가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초 서방 고고학자들에게 낭만적 모험의 장소로 여겨진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에 이르는 실크로드에서 벌어진 문화재 발굴과 보물 탐사의 장면은 한편으로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문화재 약탈사이기도 하다.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이 실크로드를 따라 보물 추적을 시작한 이후 이른바 서구 학자들은 사막에 숨어 있는 문화재와 보물을 제 나라로 실어가기에 바빴다.

심지어 영국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은 인류 문화유산으로 꼽히는 '금강경' 목판 인쇄본을 비롯한 1만3,000종의 고문서를 중국인에게서 단돈 130파운드(약 25만원)에 사들였다. 때로 존경 받는 학자이자 야심만만한 모험가는 이 과정에서 용맹스러운 약탈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또 가치를 헤아리기조차 힘든 귀중한 보물들이 햇빛 아래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는 이내 종적을 감춰버린다.

나머지 두 이야기는 그야말로 보물에 얽힌 흥미로운 사건이다. 1918년 10월의 한밤중에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궁 보물 전시실 8번 진열장에서 도난 당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저주 받은 보물이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트와네트, 비참한 최후를 맞은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제 칼 1세 등 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했던 사람은 하나 같이 불운했으며 이는 유럽 왕정의 쇠락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막바지 독일 제 3제국 총독인 히틀러는 730개의 금괴와 외화를 알프스의 요새에 숨겨두라고 명령한다.

그로부터 55년 후 영국의 역사학자 이언 세이어와 한 무리의 보물 추적자들은 축적 2,500분의 1 지도 한 장을 들고 제 3제국의 사라진 보물을 찾아 떠난다. 비밀의 흔적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발굴에는 성공하지 못한 보물 찾기의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책을 엮은 ZDF 편집자 볼프강 에베르트는 서문에서 빌헬름 2세의 신하를 지낸 그라프 루크너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썼다. "잉카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 바다 속에 가라앉은 수많은 선박에 실린 금덩이, 또한 최근의 세계 대전 중에 비밀스럽게 사라진 수백만 마르크, 그것들을 그대로 놓아두어라! 황금의 열병은 그대들을 세계의 외진 구석으로 끌어가 내내 헤매고 소망하고 절망하다가 끝내 좌절하게 만든다." 그러나 보물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집념은 또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 이 책은 이 양면을 함께 보여 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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