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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무라카미 류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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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무라카미 류 "69"

입력
2003.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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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삐리' 적 이야기니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정말 악질적인 교사들이 많았다. 이제 와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그것이 불가능한 종자들.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서 애들 패는 재미로 사는 인간들. 완장 하나 채워주면 그것도 권력이라고 눈에 불을 켜고 게거품을 뿜어대며 터무니없이 발광하는 작자들. 상상이 안 간다고? 영화 '친구'에서 "니 아부지 뭐 하시노?"하며 무식하게 학생들을 두들겨 패던 담임을 떠올리면 된다.그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교련 교사였다. 언제나 빨간 해병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우리는 그를 "개병대"라고 불렀다. 개병대는 우리를 그야말로 개 패듯 팼다. 하지만 억압에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다. 이제 더는 매를 못 맞겠다 싶었을 때, 우리는 아예 이 놈의 학교를 때려치울 결심을 하고, 그를 학교 밖 뒷골목으로 불러내 집단으로 짓밟아버렸다. 그날 부러진 개병대의 이빨이 세 개였는지 네 개였는지. 당장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상관없었다. 단지 그 저승사자 같던 개병대를 죽도록 패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앞 뒤 가릴 줄 모르고 눈에 뵈는 게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가능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 일어났다. "속 시원하게 잘리겠군" 하며 찾아간 학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교련 교사는 병가를 냈다고 했다. 일주일쯤 후에 그가 돌아왔는데 그래도 역시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개병대는 우리를 보자 비굴하게 눈을 내리깔며 허둥지둥 발걸음만 재촉했을 뿐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이럴 수가! 우리가 꿈을 꿨나? 아니다. 권력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비굴하고 훨씬 더 영악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용서해줬느냐고? 천만에! 나는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개병대 같은 놈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류는 이들과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내가 읽은 가장 유쾌한 소설 '69'의 후기에 이렇게 썼다. "어느 시대건 선생이나 형사라는 권력의 앞잡이는 힘이 세다. 그들을 두들겨 패봐야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쪽이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심 산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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