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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거꾸로 가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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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거꾸로 가는 시계

입력
2003.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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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태평양전쟁 책임을 묻는 극동 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전범들은 죽어서 묘를 갖지 못했다. 화장해 태평양에 뿌림으로써 전후처리를 깨끗이 매듭짓는다는 것이 연합군사령부 방침이었다. 그해 12월23일 형이 집행된 도조 히데키(東 英機) 등 A급 전범 일곱 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23일 첫 새벽 도쿄 스가모 형무소 교수대에서 처형된 일곱 전범의 시체는 삼엄한 경계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요코하마 구보야마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아침 일찍 한 그릇의 뼈로 변한 일곱 명의 유골은 곧 수송기에 실려나가 태평양 상공에서 바다에 뿌려졌다. 유족 누구도 한 조각 뼈를 얻지 못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맥아더 군정이 끝난 53년 5월 유골 일부가 이즈(伊豆)의 산속에 묻혀있으며, 일부는 도조 미망인에게 넘어간 사실이 밝혀졌다.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피고 변호인 산몬지(三文字正平)변호사가 화장장 인부들을 시켜 빼돌려 숨겨두었다가, 이즈온천 부근 흥아(興亞) 관음상 밑에 안장한 것이다.

■ 그로부터 2년 뒤인 55년 4월 후생성은 이 유골을 발굴해 정식으로 유족들에게 인도했다. 전범 출신이 총리와 국회의장 자리에 앉은 시대였던 것이다. 60년 8월에는 우익 인사들이 전범 마쓰이 이시네(松井石根) 대장 고향인 아이치(愛知)현 미가와(三河) 국립공원 경내에 분골을 안치하고, '순국7사묘'(殉國七士廟)를 만들어 성역화를 서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곱 전범의 처형을 슬퍼하는 것은 일본 국민의 정서와 상당한 거리가 있어, '순국7사비' 제막식은 몰래 치러야 했다.

■ 그러나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일곱 전범의 혼령이 합사된 뒤로는 분위기가 역전되고 만다. 79년 4월 우익 인사들에 의해 그들의 위패가 모셔지자 전몰자유족회 같은 우익 세력에 영합해야 할 정치인들이 다투어 참배를 시작했다. 엊그제 기습적으로 이 신사를 참배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는 연속 3회 참배한 첫 총리가 되었다. 매년 한번씩 참배하겠다는 공약을 지킨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는 국립묘지 같은 대안을 마련해 걱정을 덜어주겠다던 이웃나라 정상들과의 약속은 깨버렸다. 일본의 시계는 언제까지 거꾸로 갈 것인가.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cjm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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