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4일 대북 정책의'과감한 구상(bold initiative)'을 거론하면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해법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대북 식량 및 에너지 지원 의사를 표명한 부시의 이날 발언은 미국의 대(對) 북한 핵 정책의 무게중심이 봉쇄와 억제에서 대화와 협상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변화의 이면에는 이라크 문제에 전념하기 위해 북한 변수를 부각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미국 최고 지도자가 북 핵 사태 후 처음으로 보상을 언급함으로써 평화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된 셈이다.
■과감한 구상
부시의 언급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부시는 2001년 6월 대북 정책 검토를 마치면서 새로운 정책 틀로'과감한 접근(bold approach)'을 제시한 이래 여러 차례 이를 언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핵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발언은 북한의 반응에 따라 꽉 막힌 북·미 관계를 뚫는 돌파력을 지닐 수 있다.
부시 구상의 골자는 북한이 핵·미사일 포기, 재래식 병력 감축, 인권 개선 등의 조치를 취하면 미국은 경제 지원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관계 정상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보상은 북한의 선(先) 핵 폐기를 전제로 한다.
■다자 틀을 통한 해법 찾기
부시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로 핵 문제를 풀었던 빌 클린턴 정부의 접근 방식을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는 미국만이 짊어질 게 아니라 이해 당사국들인 주변국과 국제사회가 함께 해결의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게 부시 정부의 생각이다. 여기에는 보상 재원에 대해 미국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듯하다.
■제네바 핵 합의 대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1994년 제네바 핵 합의가 북한의 핵 물질 생산 능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 이를 대체할 새 협정이 논의될 것임을 시사했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핵 합의의 무효를 공식 선언했다. 새로운 합의는 제네바 핵 합의로 묶였던 플루토늄 생산뿐 아니라 우라늄 핵 개발의 폐기까지를 포괄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제네바 합의에 근거한 중유 공급이나 경수로 건설 지원 등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렵게 됐다. 파월 장관은 "미국은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말해 경수로 건설 대신 화력발전소 건설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포괄 협상
부시 정부는 핵과 미사일 회담을 별도로 진행했던 클린턴 정부와는 달리 핵·미사일·재래식 전력 문제를 일괄 타결하는 협상을 원하고 있다.
문제는 단계적이고도 개별적 협상을 통해 실리를 취해 왔던 북한의 태도이다. 뉴욕 타임스는 "협상이 포괄적일 경우 합의를 이루기가 더 어렵다"며 "협상이 길어질 경우 북한은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 플루토늄 생산이나 미사일 시험 발사의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