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나는 호랑이 발자국을 보았다. 엉덩이를 돌려대고 발자국을 찍는 호랑이를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그 발자국은 호랑이가 남긴 것이었다. 스무 살의 싱싱한 직감과 생생한 정황에 의한 명백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호랑이, 또는 호랑이 발자국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나마저도 남한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는 둥 호랑이가 왜 발자국 하나만 남기고 주변에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겠느냐는 둥 호랑이의 세력권이 천리인데 왜 천리 사방에 그런 이야기가 없느냐는 둥 해가며 그때의 그 발자국을 부정하는 대열에 합류하려고 했다. 이처럼 나는 내가 보고 겪은 것, 만난 사람과 그때의 느낌을 남은 물론이고 스스로 믿을 만한 것으로 여기게 하기 위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더 범위를 넓혀 말하자면 누구나 인생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호랑이, 혹은 호랑이의 발자국 같은 '그 무엇'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나의 호랑이 발자국은 내 고향인 경상북도 상주군 공성면 하고도 어느 산자락에 나 있었다. 1980년에서 81년 사이의 겨울이었는데 대략 81년 1월초였다. 12월 중순에 그 곳으로 들어간 건 알지만 산중에는 달력이 없어 날짜를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겨울에는 스님들이 큰 절로 가는 바람에 비는 자그마한 암자가 있었고 그에 딸린 요사채가 내 거처였다. 요사채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어 출입문을 닫으면 방안은 그대로 캄캄절벽이 되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불을 밝히려면 초를 켜야 했다. 그래서 문을 닫아놓고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문을 열면 어느 때는 눈에 반사된 겨울 햇빛이 눈에 시려서, 어느 때는 정말 눈이 시리도록 맑은 겨울밤의 별빛에 신음 소리를 내곤 했다. 그때는 사물과 사물의 경계선이 조리개를 한껏 조이고 찍은 사진처럼 선예도(線銳度)가 높았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물을 뜨러 양동이를 들고 요사채에서 백 걸음쯤 떨어진 계곡으로 향했다.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가는 길이라 아무 생각 없이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길 가운데 무슨 발자국이 하나, 그 길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는 낙인처럼, 아니 낙관이라 해도 좋고 문장(紋章)이라 해도 상관없다, 찍혀 있는 것이었다. 그 발자국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리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느꼈는데 그건 내 머리털이 곤두서는 소리였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에 직면한 연약한 한 인간이 느낄 그런 공포, 양동이 하나로 온몸이 무기인 희대의 살인마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한 개인이 느낄 법한 전율이 그럴까.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내 발을 그 위대한 발자국 위에 얹어 보았다. 길 위에 단 하나밖에 찍혀 있지 않은 그 발자국은 눈이 녹았다 얼었다 하면서 원래의 크기보다 훨씬 커졌을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컸다. 농구화를 신은 내 발이 쑥 들어갈 정도였으니까.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달려 방으로 뛰어들었다. 두께가 십 센티미터쯤 되는 굵은 나무로 테를 두른 육중한 방문, 도대체 절간의 요사채에 왜 그런 성문 같은 방문이 필요한지 알 수 없게 만들었던 그 방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 동안 눈이 내렸다. 겁이 나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물이 필요하면 방문을 살짝 열고 팔을 내밀어 코펠로 눈을 긁어 담아 녹여서 썼다. 다행히 요사채 부엌으로 나가는 문이 따로 있어서 황송하게도 부엌을 화장실 대용으로 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살다가 행복하게 늙어죽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사흘이 한계였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가지고 온 옷을 몽땅 꺼내 입고 요사채 벽에 걸려 있던 암자 소유의 털옷까지 겹쳐 입었다. 싸구려 화학섬유로 만든 그 털옷은 백결선생(百結先生)이 두고 갔는지 온통 기운 자국이었고 한 번도 빤 적이 없는 듯 소 덕석 같은 냄새가 났다. 털옷까지 껴입은 건 날이 추워서가 아니었다. 호랑이가 혹시 나를 잡아먹으려고 들 때 고생 좀 하라고, 호두처럼 알맹이를 꺼내 먹기가 쉽지 않도록 하려고 껴입은 것이었다. 부엌에는 불을 땔 때 장작을 다듬기 위해 들여놓은 손도끼가 있었다. 또 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해우소를 치울 때나 쓸 법한 장화를 마루 밑에서 찾아 신고 한 손에 손도끼를, 한 손에는 기특하게도 양동이를 들고 나는 호랑이 아가리 또는 발자취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의미를 모르는 이상한 고함을 내지르며.
공포의 그 발자국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워낙 단단히 얼어붙어 내린 눈이 쌓이지를 못하고 바람에 쓸려간 듯 했다. 나는 여전히 입속말로 '이이이이' 하는 소리를 내며 그 발자국 속에 장화 신은 발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는 크기가 비슷했다. 무섭지 않았다. 사흘동안 그 발자국을 화두로 면벽수도를 한 뒤라 그런지 실물을 보니 반갑기까지 했다. 겨울산 오후의 잔양 속 어디고 호랑이, 혹은 호랑이 같은 존재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계곡으로 가서 물을 떴다. 방으로 돌아와 사흘 만에 밥을 지어 먹었다.
배가 부르고 정신이 돌아오자 내가 본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산중의 유일한 이웃인 고개너머 채석장에 갔더니 사람들은 일 나가고 없었고 밥 해주는 아주머니는 자고 있었다. 내친 김에 마을까지 내려갔다. 마을회관의 새마을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저녁이 되었고 동네 청년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청년들이 건네주는 고구마를 낫으로 깎아먹다가 손가락을 깊이 베었다. 피를 막고 붕대를 감고 소독을 하는 의미에서 한 잔 더 마시고 취해서 구석에 오그리고 자느라 바빴다. 그래서 소설적인 가감 없이 순수한 호랑이, 또는 호랑이 발자국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관념이나 정신의 모험은 일생 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면 진짜 도사는 못되었다. 자꾸 그 이야기를 떠들면서 허풍선이가 되는 데는 성공했다.'
인용부호 속의 글은 '나는 왜 자꾸 집을 나가는가'라는 요지의 글의 일부분인데 글을 쓴 시기는 십여 년 전이다. 그때는 소설을 쓰지 않고 품고만 있었을 때다. 품고 있는지 몰랐을 때이기도 한데 그 겨울 그 호랑이 발자국을 본 때로부터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때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오로지 시만 생각하고 살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시가 제일의 의의였음은 확실하다. 그런데 일생 분의 모험, 진짜, 도사, 허풍선이 같은 단어들은 시적이지 않다. 이런 불순하고 수상쩍은 것들은 한 이틀 조용히 내린 눈처럼 순수한 세상에 조금만 섞여도 그 세상 자체를 불순하게 만든다. 돌아보니 그 때 이미 시에서도 삶에서도 불순은 각오하고 있었다. 지금보다 혈기가 방장해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시는 불온하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나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쓰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원래는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웬 놈의 호랑이 발자국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가 물 뜨러 가는 길 위에 찍힌 이후, 모든 길이며 겨울 오후며 시며 소설이며 양동이며 부엌이며 요사채, 손도끼마저 불순해졌다고.
90년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 제 길을 찾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말을 듣는 김에 더욱 잡스러워지려고, 이른바 크로스오버로 놀아보려고 노력했다. 잡(雜)은 잡대로 재미와 의의가 있다. 불순이 내면적인 것이라면 잡은 외부의 조건이다. 또는 외부와의 관계에서 비롯하는 성향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있다. 나는 잡스러운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잡의 세계에는 '세계 콤플렉스' 따위는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섭리인지 잡종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한다. 가령 내가 아는 최고의 멧돼지 전문 사냥개는 투견과 수렵용 개의 혼혈인데 자신의 형질을 물려받은 새끼를 낳지 못하고 있다. 지금 명견으로 이름을 떨치고는 있지만 그 명성도 당대에서 그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또 어떤가, 당대를 넘어설 그 무엇이 불순한 운명에 있을까. 내가 멧돼지 사냥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더 사납고 더 예민하고 더 흉악스럽기를 바라겠다, 멧돼지에게만은.
왜 소설을 쓰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한동안은 호랑이 덕분이라고 답할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내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 있는 건지, 호랑이 발자국에 가만히 발을 넣어보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연보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시 '유리 닦는 사람' 등 5편으로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 등단
시집 '낯선 길에 묻다' '검은 암소의 천국'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쏘가리'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편 '호랑이를 봤다' 장편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 등
한국일보문학상(1997) 동서문학상(2000) 이효석문학상(2001) 동인문학상(2002)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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