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 강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군요."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의 태풍전망대. 800m 앞 전방 고지에 북한군 초소가 버티고 있는 최전선에서 '분단의 젖줄' 임진강은 남북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흐르고 있다. 북한 두류산에서 발원한 물이 개성시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272.4㎞의 분단 현장을 관통하는 강. 주변에 발달한 습지덕에 각종 야생동식물의 서식처로 이름 높지만 분단의 장벽은 임진강에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위기의 임진강
"지금이야 물 흐름이 전과 같지만, 여름철에 북이 또 언제 물을 막고, 물을 풀지 알 수 없죠." 연천군 민통선 지역내 임진강변을 따라가는 동안 이석우(李錫雨) 맑은연천21 사무국장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2001년 임진강 상류에 북한의 '4월5일댐'이 건설된 이후로 남쪽 파주 연천 주민들은 때아닌 물난리와 식수난만 다섯차례나 겪어야만했다.
지난달에는 북측이 휴전선 북쪽 42.3㎞ 지점에 총저수량 4억톤의 대규모 댐인 황강댐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긴장이 더욱 고조된 상태. 이 국장은 "황강댐이 건설되면 임진강 수량도 줄어들고 수질도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며 "어쩔 수 없이 남쪽에서도 대응댐을 건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래저래 임진강의 생태계가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겠냐"고 한숨을 지었다.
생태계 보고, 임진강 습지대
태풍전망대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4월5일댐', 중공군과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는 베티고지와 노리고지 등이 어김없이 분단현장임을 실감케 했지만 DMZ내 임진강 변에 노닐고 있는 두루미 예닐곱 마리가 임진강의 생태계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황호섭(黃鎬燮) 환경운동연합 생태팀장은 "두루미들이 계곡지 주변에 서식하는 것은 흔치 않은데, 북측 군사분계선 부근의 오장동 농장의 곡물과 임진강변의 습지대 덕택인 것 같다"며 "분단의 살벌함 속에서도 임진강이 수많은 야생동식물의 보금자리를 지켜온 셈이다"고 말했다. 철책선 근무를 서고 있는 한 군인은 "임진강에서 자라와 쏘가리가 많이 잡힌다"며 웃음을 지었다.
특히 임진강 곳곳에 발달한 습지대는 야생동식물 천혜의 낙원. 경기 파주시 문산읍의 초평도 주변에는 재두루미와 큰기러기, 쇠기러기 등 기러기류, 청둥오리, 황오리 등 오리류 철새 수백마리가 눈에 띄었다. 기러기 수십 마리가 V자 대형을 만들며 떼지어 날아가 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김귀곤(金貴坤)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는 "임진강물이 수시로 범람하면서 주변에 습지대가 풍부하게 발달했다"며 "습지대는 수생식물에서 곤충류, 양서·파충류, 조류, 포유류까지 안정된 먹이사슬 구조가 이뤄지면서 생물학적 슈퍼마켓이라고 할 중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파주시 문산읍 반구정에 이르렀을 때 임진강 건너 2㎢에 이르는 장단반도의 갈대군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지난해 경기도청의 조사에서 노랑턱멧새, 멧비둘기를 비롯해 천연기념물인 개리, 흰꼬리수리, 황조롱이 등 23종의 조류, 구렁이 등 멸종위기의 양서·파충류 8종, 고라니 삵 너구리 등 포유류 4종 등의 서식이 확인된 임진강 유역 최대의 생태계 보고이자 '착한 청소부' 독수리 400여마리가 서식하는 최대 월동지.
바람잘 날 없는 임진강
그러나 임진강 유역이 바람잘 날 없는 것은 북한측 댐 때문만은 아니다. 민통선 지역내였지만 임진강을 따라 오는 길 곳곳의 야산들이 인삼밭 등으로 개간돼 있었다.
습지대도 위협받기는 마찬가지. 안창희(安昌熙) 경기북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습지의 가치를 몰랐을 때는 습지를 논으로 마구잡이로 개간해댔지만 임진강 유역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논이었던 곳이 습지로 변했다"며 "하지만 최근 주민들의 민원으로 다시 논으로 재개간되는 곳이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김귀곤교수는 "하루 빨리 임진강 유역에 대한 전면적인 습지 조사를 벌여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 관리해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이석우 연천사랑연대 사무국장
"이제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의 환경을 위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죠."
'임진강 파수꾼' 이석우(李錫雨)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사무국장(사진)은 임진강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휴전선과 인접한 연천 지역의 특수한 환경 때문에 변변한 시민단체 하나 없었던 곳에서 연천 토박이 주민인 이국장은 1996년 처음으로 시민단체를 만들어 연천댐 철거를 이끌어내는 등 연천 주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왔다.
"연천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군사적 상황 때문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억눌린 분위기에 살아왔어요. 96년도 연천댐이 붕괴해 대규모 홍수를 겪으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자각이 일었죠."
시민단체 출발 당시에는 '적색분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젠 연천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임진강의 폐기물 방출을 감시하기도 하고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한탄강댐 반대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이 국장은 2000년 민관이 함께 조직한 지방의제 추진위원회인 '맑은연천21'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임진강의 보존과 개발의 조율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임진강은 남북 분단 상황으로 수난을 겪고 있지만, 이제 남북이 공동으로 힘을 합쳐 보존해나가야할 우리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임진강 생태도감 작성 작업이다. "임진강에 이런 저런 야생 동식물이 있다는 문헌은 많지만 변변한 사진 하나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며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임진강의 자연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송용창기자
■"한탄강댐 건설 굳이…"
임진강 유역에 두개의 댐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북한이 휴전선 북쪽 42.3㎞ 지점인 황해도 금천군 황강리 일대 임진강 상류에 3억∼4억톤 규모의 황강댐을 건설중인 것이 확인되자 건설교통부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연천군 임진강 유역에 1억3,000만∼2억톤 규모의 대응댐 성격의 홍수조절지를 건토키로 했다. 인근 임진강 지류인 한탄강에도 2007년 완공목표로 댐 건설이 추진중에 있어 연천 주민들은 동시에 2개 댐을 갖게 된 것. 하지만 예정에도 없던 댐이 추가로 건설됨에 따라 한탄강댐 건설 반대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된 상황이다. 한탄강댐은 파주·연천지역의 상습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3억1,100만톤 규모의 홍수조절용 댐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지역주민들은 임진강 수량의 15%에 불과한 한탄강댐은 실질적인 홍수조절능력이 없고 한탄강의 절경만 훼손한다며 반대해왔다.
연천지역실천사랑연대 이윤승(李允承)의장은 "북한의 황강댐에 대응하는 댐 건설이 불가피하다면 이 대응댐 규모를 조금 더 늘리면 한탄강댐을 건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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