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공적자금 추가 조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2000년 4월 이용근 당시 금감위원장) "현 시점에서 국회에 20조원이나 30조원의 공적자금을 추가 동의해 달라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같은 해 5월 이헌재 당시 재경부장관) "추가 소요가 있으면 어떤 면에서 필요한지 국민에게 보고하고 국회에 정식 요청하겠다."(같은 해 8월 진 념 당시 재경부장관)경제 관료들의 잦은 말 바꾸기 끝에 공적자금 논란이 '40조원 추가 조성'으로 결론을 맺은 것은 그 해 9월. 외환 위기 당시 마련한 공적자금 64조원이 1999년말 모두 소진됐는데도 쉬쉬 하며 시간을 끌면서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추가 공적자금 소요액은 당초 10조원에서 20조∼30조원으로, 다시 50조원(회수액 재투입분 10조원 포함)으로 불어났다.
인수위가 주목하는 부분도 불투명한 공적자금 추가 조성 결정 과정이다. 총선 등을 앞두고 여당이 국제통화기금(IMF) 조기 졸업과 경제위기 극복을 홍보하며 "정부가 부실을 숨길수록 부실은 확대될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하다 결국 새 재경부장관을 통해 "추가 조성이 필요하다"고 실토한 과정에 많은 허점이 노출됐다는 판단이다. 한 국책 연구소 관계자는 "당시 공적자금 추가 조성을 조금만 더 일찍 했더라면 액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며 "정치적 판단에 의해 국민 혈세가 수십조원이나 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2001년 취해진 대기업 규제 완화 조치도 구체적인 잣대 없이 정치적인 절충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 기업집단 축소 조치. 당초 자산순위 30위까지의 대기업집단이 출자총액제한의 적용 대상이었지만 여·야·정은 2001년 8월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적용 대상을 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기준이 되는 자산 규모였다. 10조원(재정경제부), 3조원(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 맞선 끝에 '5조원 이상'으로 절충됐다.
시민단체들은 당시"주먹구구식으로 기준 자산을 정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했다. 출자총액제한 예외 조항 확대 조치나 재벌금융사 소유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 예외 허용 등의 조치 역시 정치권을 등에 업은 재계의 요구가 무차별적으로 수용된 결과라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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